특급대우에도 삼성SW센터장 3년째 공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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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재, 한국 근무 꺼려… 기업들 발 굴러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3년째 소프트웨어센터장을 영입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전사적 소프트웨어 역량을 결집하겠다며 2011년 세운 소프트웨어센터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근무 중인 1000명을 비롯해 회사 전체적으로 4만 명에 이르는 소프트웨어 인력을 관리하고 차세대 기술 개발을 수행하는 조직이다. 2012년 말까지 김기호 부사장(현 삼성전자 프린팅솔루션사업부장)이 센터장을 맡아오다 2013년부터 적합한 센터장 후보를 찾지 못해 부센터장 체제로 운영 중이다.

○ 센터장 찾아 삼만리

25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인사팀은 3년째 세계 각국으로 ‘S급 인재’ 섭외를 위한 인터뷰를 하러 다니고 있지만 핵심 인재를 영입하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자녀 교육과 경력 관리의 어려움, 배우자 경력단절 및 인종 차별 등으로 인해 고급 인재들이 한국에서의 근무를 꺼리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최소 부사장급 이상 되는 고위 임원이기 때문에 연봉이나 근무 조건은 실리콘밸리 최고 수준과 다르지 않다”며 “하지만 자녀들의 교육여건과 배우자들의 커리어 문제 등은 단일 기업 수준에서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라 우리도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인재들의 국내 근무 기피는 삼성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내 기업이 겪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근로자 중 학사 이상 학력 또는 해당 분야 5년 이상 경력을 가진 전문직 인력은 전체 등록 외국인의 4∼5% 수준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대부분이 회화지도 등 서비스 직종이다. 기업의 부가가치 창출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인력은 이 중에서도 38%에 불과했다. 지난해 10월 통계청 조사에서도 국내 외국인 취업자 10명 중 6명은 한 달에 200만 원 미만을 받는 단순 근로자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 자녀교육·배우자 커리어 난관

외국인들이 하소연하는 가장 큰 문제는 자녀교육과 배우자 커리어 등 가족의 삶이다. 소프트웨어 핵심 인력은 주로 북미 등 영어권 출신이 많지만 국내 외국인 학교 수가 부족할뿐더러 재학생 중 외국인 비율이 현저히 낮은 것이 문제다. 현재 전국에 영미계 학교는 30개 이상이지만 조기 유학을 줄이기 위해 내국인 입학 자격을 완화한 뒤로 학교마다 한국인 비중이 급격하게 올라갔다.

보통 해외에서는 이직을 통해 자신의 경력과 몸값을 올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국내에는 글로벌 기업이 많지 않아 미래 커리어 관리가 어려운 점도 문제로 꼽힌다. 실리콘밸리는 물론이고 홍콩이나 싱가포르만 해도 외국계 기업 헤드쿼터가 많기 때문에 이직이 상대적으로 쉽지만 한국은 회사 풀 자체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배우자 경력이 단절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아직까지 여전한 인도인이나 흑인 등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도 외국인 인재들에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회사 내에서는 잘 대접받는다 해도 당장 회사 담장 밖으로 나가는 순간 무시당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다 국내 유명 인터넷업체에 스카웃돼 2년 전 한국으로 온 미국인 P 씨(43)도 이런 이유로 최근 한국을 떠나기 위해 준비 중이다. P 씨는 “흑인인 내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돌아다닐 때와 소유 중인 명품카 ‘마세라티’를 타고 돌아다닐 때 받는 대우가 극명하게 갈린다”며 “처음 한국에 올 때만 해도 이민까지도 생각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두 딸과 아내를 더이상 외면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일과 삶이 구분되지 않는 한국 특유의 기업 문화도 외국인들이 버티기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해 현대경제연구원이 국내 근무 중인 교수와 전문직 등 외국인 전문인력 1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도 “일과 삶의 균형에서 어려움을 느낀다”는 응답이 36.9%로 높게 조사됐다.

영국계 은행의 국내 지점에 파견 와 근무 중인 R 씨는 “먹는 것, 자는 것, 쉬는 것을 포함한 일상이 ‘일’에 매몰된 한국에 두려움을 느낀다”며 1년 일찍 파견 해제를 신청했다.

○ 선진국은 경쟁적 유치

그동안 주로 내국인이 기피하는 분야의 노동력 공급 차원에서 외국 인력을 유입해 왔던 한국과 달리 선진국들은 고급 외국인 인력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은 예전부터 취업 이민 쿼터를 늘려온 덕에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 중 인도 출신 등 이민자가 적지 않다.

독일도 외국인 전문인력 유치를 위해 2012년 8월에 ‘블루카드 제도’를 도입한 뒤 2년 만에 1만7157명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도 최근 정보기술(IT) 등 전문 분야에서 고도의 기술을 가진 외국인은 최장 체류 기간을 8년으로 연장해주는 등 전문인력 수용 확대를 위한 정책적 변화를 시도 중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중장기적으로 외국인 전문인력 유치를 확대하기 위해 언어훈련 및 자녀교육 지원을 중점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며 “내외국인 모두를 대상으로 사회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관련 법제도 강화 및 교육 프로그램 참여도 장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지현 jhk85@donga.com·박성진 기자
#외국인노동자#인재#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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