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포스코의 첫 적자와 外風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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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대환이 쓴 평전 ‘박태준’을 읽었을 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구절이 있다. “이 돈은 우리 조상님들 피 값이다. 공사를 성공 못하면 우리 모두 다 우향우해서 저 포항 앞바다에 빠져 죽자.”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로 일본에서 받은 무상자금 3억 달러, 유상자금 2억 달러를 종잣돈으로 포항제철을 짓는 만큼 사력을 다해 공사를 마쳐야 한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밤낮 없는 ‘돌관(突貫)공사’로 공기를 줄였고 가동 여섯 달 만에 1200만 달러 흑자를 냈다. 2002년에는 초일류 글로벌 기업에 걸맞게 포스코로 이름을 바꿨다.

▷포스코가 작년에 창사 이래 첫 적자를 볼 것 같다는 예상이 나온다. 1968년 설립 이후 47년 만에 적자를 내는 셈이다. 증권가에서는 450억∼1420억 원의 순손실을 예측한다. 작년 10월 포스코 스스로 3000억 원의 예상 적자를 공시했다. 영업이익은 흑자지만 계열사 및 해외자산의 평가손실과 환율상승에 따른 외화환산손 등이 적자의 주범이라는 분석이다. 철강업 경기가 얼어붙은 지 오래여서 영업이익도 줄어드는 추세다.

▷작년 3월 이완구 전 총리가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고 공언하면서 포스코와 계열사에 칼바람이 몰아쳤다. 총리 담화 직후 검찰이 포스코를 고강도로 압수수색했다. 값싼 중국산 철강이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 넘치는 판에 검찰 수사로 임직원들은 이중고를 겪었다.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 정준양 전 회장을 선임하라고 압력을 넣고 측근 회사에 30억 원대의 이득을 줬다며 불구속 기소했다. 포항이 지역구였던 이 전 의원은 관심이 더 높았겠지만 역대 정권마다 포스코를 전리품처럼 다뤘다.

▷포철 건설을 진두지휘한 사람은 박 전 회장이었지만 외풍(外風)을 막아준 사람은 ‘종이마패’까지 써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박 전 회장이 나중에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도 스스로 병풍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에도 포스코가 무풍지대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포스코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선결 과제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박태준#포스코#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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