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창현]超저유가의 ‘저주’를 풀어내는 지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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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1973년 오일쇼크 당시 3달러 정도였던 유가가 12달러 근처로 상승하자 각국의 중고차 시장에서 대형차들이 한꺼번에 매물로 쏟아졌고 세계 경제에는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제조원가 상승을 유도하면서 불황 국면에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본격화했다. 흥미로운 점은 유가 상승 이후 중동 산유국에 막대한 규모의 석유 판매대금, 곧 ‘오일머니’가 유입됐고. 돈방석에 올라앉은 산유국들은 대규모 토목 건설공사를 발주하는 등 신규 프로젝트에 착수해 세계 경제에 새로운 수요가 창출됐다는 사실이다.

우리 건설사들이 이 시장에 진출하면서 이른바 ‘중동 특수’가 일어나 우리 경제에는 가뭄에 단비 같은 외화자금이 유입됐다. 그뿐 아니다.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던 중동 국가들이 오일머니를 유로달러 시장에 예치하면서 이 시장에 자금이 풍부해졌고 이로 인해 세계 경제 내에 자금 공급이 원활해졌다. 석유 가격 인상에 따른 비용은 모든 경제주체들이 골고루 부담한 셈이었지만 오일머니가 돌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과거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00달러를 넘나들던 석유 가격이 이제 20달러 선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석유 가격 폭락으로 인한 비용 절감 효과로 모든 경제주체의 부담이 조금씩 줄어들지만 산유국들로의 자금 유입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고 이들이 힘들어지면서 위기가 닥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석유 판매대금이 줄어들자 해외 투자자산을 팔아 치우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사우디는 우리 주식시장에서 4조 원 수준의 주식을 매도한 바 있다. 저유가 쇼크가 돌고 돌아 우리 금융시장을 강타한 것이다.

게다가 산유국 전반에 오일머니가 감소하면서 해외로부터의 수입 여력이 줄고 이로 인해 세계적으로 교역량이 감소하고 해운 운임이 폭락하고 있다. 벌크선 운임을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지수)는 금융위기 직전 11,800 수준까지 상승한 바 있는데, 최근 400 근처까지 떨어졌다. 운임이 30분의 1이 된 셈인데 이는 BDI지수가 발표되기 시작한 1985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러다 보니 해운사들은 배의 운항을 포기하고 있고 신규 선박 주문은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조선업도 힘들어지고 조선업에 많이 쓰이는 철강에 대한 수요까지 줄면서 ‘배’(조선) ‘철’(철강) ‘수’(운수·해운) 산업이 동시다발로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과거 석유 가격 급등으로 인한 충격을 ‘오일쇼크’라 불렀다면 최근의 석유 가격 급락은 ‘역(逆)오일쇼크’라 부를 만하다.

정신을 차려 저유가의 저주를 풀지 못하면 풍랑에 그대로 휘말린다. 저유가 국면에 매몰되지 말고 차분하게 에너지 절약 정책을 추진하면서 미래의 유가 상승에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힘들고 어려워진 산업에 대해 신속하고 효율적인 구조조정은 기본이다. 저유가 직격탄을 맞고 허우적거리는 분야에 대해서는 산업 구조조정과 기업 구조조정을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적립식 펀드에 가입하듯 해외 유전과 광산 등에 대한 지속적 투자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최근 정유업체인 필립스66의 주식 1억9000만 달러어치를 사들였다. 유가가 바닥 수준인 지금이 오히려 투자 적기일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에너지와 자원을 확보한다면 나중에 유가와 자원 가격이 다시 오를 경우 여러 면에서 커다란 이익이 될 것이다. 저유가 시대는 당분간 유지되겠지만 그 이후를 바라보는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석유#저유가#산유국#오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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