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부담 덜어줄 ‘전세금 펀드’… 정부 “年4% 수익 목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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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처 업무보고]정부 ‘전세보증금 펀드’ 만들기로

최근 직장인 A 씨에게 뜻하지 않게 목돈 1억 원이 생겼다. 3억5000만 원짜리 전세를 살다가 집주인의 등쌀에 떠밀려 보증금 2억5000만 원, 월 40만 원의 보증부 월세(반전세)로 전환하며 생긴 돈이다. 갑작스레 현금이 생겼으나 둘 데가 마땅치 않다. 은행 정기예금에 들어봤자 금리가 연 1.6%에 불과하니 세금을 떼면 이자로 고작 연 135만 원가량 받는다.

올해 안에 ‘전세보증금 투자 풀(전용펀드)’이 도입되면 A 씨는 고민을 상당 부분 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세입자들이 돌려받는 전세보증금을 정부가 모아 한 펀드에 담아 굴릴 예정이다. 정부는 민간 연기금 수준인 연 4% 정도의 수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면 A 씨는 연간 400만 원의 이자 수익을 얻게 된다. 월세로 갈아타며 생긴 부담(연 480만 원)을 상당 부분 덜 수 있다.

정부가 14일 이런 방안을 내놓은 것은 최근 월세 전환이 가속화되며 세입자들의 부담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전세보증금을 목돈으로 손에 쥐지만 대부분 은행 예금에 가입하는 등 별다른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14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 같은 전세보증금을 끌어모아 대형 전용펀드를 조성해 안전하면서도 효율적으로 굴리며 수익을 챙겨주겠다고 밝혔다.

○ 월세로 갈아타며 생긴 목돈 굴려준다

한국주택금융공사 등에 따르면 국내 주택시장의 전세보증금 규모는 360조 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금융당국은 이 자금이 빠른 속도로 세입자 손에 되돌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2008년 전체 임대 가구의 45%이던 월세·보증부 월세 가구의 비중이 2014년 55%로 상승하는 등 ‘월세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용펀드에 모인 보증금을 흡수해 채권, 펀드, 대출채권 등 각종 유동 자산은 물론이고 뉴스테이 등 정부의 임대사업 등에도 두루 투자할 계획이다. 금융위 김용범 사무처장은 “운용 규모를 대형화하고 다양한 자산에 분산투자를 하면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할 것”이라며 “현재 민간 연기금 투자 펀드가 3% 중반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만큼 전세보증금 전용펀드도 최소 4%의 수익률을 목표로 운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펀드 운용에서 나오는 이익은 세입자들이 월세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매년 주기적으로 배당한다. 세입자들은 투자한 전세보증금을 담보로 저리(低利)에 월세 자금 대출을 받을 수도 있다. 이 밖에 전세보증금을 전혀 돌려받지 못한 채 전세금 인상분만 월세로 돌린 준(準)전세 세입자를 위한 월세 대출도 검토되고 있다.

금융위는 전세보증금이 훗날 내 집 마련을 위한 세입자들의 귀한 종잣돈임을 감안해 보증상품 등으로 ‘손실 완충 장치’를 마련하고 최대한 원금 손실을 막을 계획이다. 또 펀드 운용에 참여하는 운용사가 운용규모의 일정 비율을 자기 자금으로 투자해 손실을 흡수하게끔 한다는 구상이다. 예컨대 500억 원을 굴리는 운용사가 자기 돈 25억 원을 직접 이 투자 펀드에 넣었다가 손실이 나면 그 돈으로 메워 준다는 얘기다. 금융위 관계자는 “안전 자산 위주로 투자해 손실 위험을 낮추고 혹여 손실이 나더라도 이를 최소화하도록 구조를 짤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세보증금 전용펀드에서 발생한 수익에 대해서는 이자소득세(15.4%)를 낮추거나 아예 물리지 않는 방안도 관계부처와 논의할 계획이다. 정부는 가입할 수 있는 전세보증금의 규모에는 제한을 두지 않겠지만 고소득자의 경우 세제 혜택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전용펀드를 은행이나 증권사 등 민간 금융사의 각 지점에서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신임 경제부총리와 함께



14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유일호 경제부총리(오른쪽)와 함께 올해 정부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 들어서고 있다. 세종=청와대사진기자단
신임 경제부총리와 함께 14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유일호 경제부총리(오른쪽)와 함께 올해 정부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 들어서고 있다. 세종=청와대사진기자단
○ 안정성과 수익성, 둘 다 잡을 수 있을까

시장의 관심은 벌써부터 뜨겁다. 초저금리 시대에 전세보증금을 돌려받더라도 돈 굴릴 길이 막막했는데 믿을 수 있는 정부가 운용하는 데다 세제 혜택도 받을 수 있어서다. 국민은행 박원갑 부동산전문위원은 “전세보증금을 떠맡아 안전하게 굴려주고 일부 원금 손실까지 흡수해준다면야 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수요자들이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일단 수익성과 안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제대로 잡을 수 있느냐가 과제로 꼽힌다. 이휘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금융위의 생각대로 원금을 보호해주며 4%대의 수익을 거두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운용업계 관계자 역시 “안전한 곳에만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수익률이 기껏해야 2% 초반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실을 운용사가 감당해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관치 논란’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예상대로 수십조 원의 자금이 모여들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포퓰리즘 논란도 만만치 않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금융회사들에 전세보증금을 투자할 새로운 금융상품을 만들도록 하면 되는 일을 왜 정부가 나서서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장윤정 yunjung@donga.com·박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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