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눈]‘제2 한미약품’을 위하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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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이사장· 일양약품 대표
김동연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이사장· 일양약품 대표
최근 한미약품이 총 4조8000억 원 규모로 당뇨병 신약 기술을 글로벌제약사 사노피에 수출하면서 제약업계가 뜨거워졌다. 그동안 내수시장의 테두리 안에서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던 제약업계에 올해 들어서만 총 5건, 약 8조 원이나 되는 기술 수출을 성공시킨 한미약품의 쾌거는 가뭄에 단비와 같은 낭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한미약품의 신약 개발 성과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다. 1987년 물질특허제도가 도입될 무렵 제약업계의 생존을 위해서는 국내 기술을 통한 혁신적인 신약 개발이 절실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에 따라 1986년 혁신형 제약기업과 바이오테크 기업들이 뜻을 모아 과학기술처(현 미래창조과학부) 산하에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을 설립하면서 국내 제약업계의 연구개발(R&D)이 시작됐다.

정부도 장기적인 시각에서 신약 개발 분야의 기초 및 원천연구 지원을 계속해 왔다.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는 항체 치료제, 유전자 치료제, 세포 치료제 등 새롭게 부상하는 바이오의약품 기반 기술에 선제적인 지원을 해왔다. 이를 통해 축적된 국내 연구 성과들이 이번 한미약품의 쾌거에 토양을 제공했다.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 기초 및 원천 분야에서 농부처럼 우직하게 가꿔온 R&D 투자가 이제야 하나둘씩 열매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한미약품의 이번 성과에 마냥 기뻐만 하기에는 국내 제약산업이 갈 길이 멀다. 글로벌 신약 개발에 필요한 인프라나 해외 제약업계와의 제휴 및 협력 경험 등 여건이 아직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산업계에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기업의 R&D 인센티브 강화가 필요하다. 바로 약값 문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경제성 평가 가격이 건강보험공단과 협상 시 추가로 하락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높은 수익은 재투자의 필요조건이다. 신약 개발을 통해 충분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기업은 큰 비용이 드는 신약 개발보다는 제네릭 생산과 마케팅에 치우치게 된다. 제약기업의 지속적인 신약 개발 노력을 위해서는 혁신성이 인정되는 신약에 대해서는 외국 약값 등을 참고해 일정 수준의 가격을 보장해야 한다. 수출 전략 품목의 경우 산정가산·이중약가 인정 등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둘째, 기업의 신약 개발에 대한 정부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 제약산업 육성 기금과 세제 지원 등 재정 지원의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 큰 비용이나 시간이 수반되는 임상에 대한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 미래부 등 관계 부처는 올해 초 ‘바이오미래전략’을 통해 기업의 글로벌 임상 지원 강화를 제시한 바 있다.

셋째, 기업 입장에서는 일관성 있는 R&D 전략을 견지해야 한다. 단기·중기·장기 중점 종목을 선택해 명확한 신약 개발 포트폴리오를 수립하되, 실패가 예상되는 연구에 대해서는 과감한 맺고 끊음이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연구자들의 실패를 탓해서는 안 된다.

혁신적인 신약 개발은 차세대 성장동력일 뿐만 아니라 국민 생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매우 크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미약품의 성과를 계기로 멀게만 보였던 글로벌 신약 개발의 실마리가 보이는 이때, 샴페인을 터뜨리기보다는 더욱 적극적인 R&D와 체계적인 정부 지원을 통해 제2, 제3의 한미약품, 그리고 우리 제약기업의 글로벌 제약기업으로의 환골탈태를 도모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동연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이사장·일양약품 대표
#한미약품#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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