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살라” 기업탐방 발길 끊은 금융투자사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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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질서 교란’ 처벌 강화 40여일

자산운용사 A사의 펀드매니저들은 7월부터 ‘기업 탐방’ 발길을 아예 끊었다. 지난달 1일부터 미공개 기업 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챙기는 등의 ‘시장질서 교란행위’에 대한 처벌이 대폭 강화된 뒤 나타난 현상이다. A사 본부장은 “부지런히 투자 대상인 기업들을 찾아가 정보를 들어야 하는데 혹시나 문제가 될까 봐 아예 회사 차원에서 금지령을 내렸다”며 “투자 정보가 부족해 투자 종목 선정에 애를 먹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시장질서 교란행위 규제가 강화된 지 50일 가까이 흐르면서 금융투자업계가 기업 접촉을 꺼리고 투자보고서 발행을 줄이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이런 투자정보 공백이 결국 투자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규제 강화로 미공개 정보를 주고받은 기업의 내부자와 1차 정보수령자로 국한됐던 불공정거래 처벌 대상이 2, 3차 수령자 등으로 확대됐다. 이에 B자산운용사는 펀드매니저들에게 외부인과 통화하거나 접촉한 기록을 일괄 정리해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 부서에 넘기도록 하고 있다.

C증권사는 사내 메신저를 제외하고 리서치센터 직원들의 PC에서 모든 메신저를 삭제하도록 했다. 외부인 접촉을 피하면 미공개 정보 자체에 노출되지 않을 것이란 계산에서 내린 조치다. 이 증권사 리서치센터 팀장은 “첫 처벌 케이스로 걸리면 안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여의도 금융투자업계가 몸을 사리고 있다”며 “정보 수집도 경쟁력인데 이게 원천봉쇄된 셈”이라고 말했다.

기업 방문과 정보 수집이 막히면서 증권사 보고서도 줄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발간된 증권사 보고서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6%, 개별종목 분석 리포트는 1.8% 감소했다. 개별종목 리포트에 산업 전반을 분석한 리포트도 적지 않아 실제 종목 분석 리포트는 훨씬 더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주식거래가 크게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보고서 발행이 오히려 늘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널리스트의 활동 위축으로 증권사가 내놓는 기업의 실적 전망치(컨센서스)가 실제 실적과 차이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C증권사 팀장은 “유통되는 정보의 절대량이 줄어든 것뿐만 아니라 정보를 얻고도 이를 확인할 곳이 없어 정보의 정확도 또한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D증권사 관계자는 “언론사 취재 등에 대응하기 위해 리포트를 일부러 작성하기도 한다”며 “리포트에 작성한 내용 외에 다른 이야기를 하면 법에 저촉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 투자정보 제공자들의 역할 축소로 정보 유통량이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보 생산자인 애널리스트들의 활동이 위축되면 결국 정보 접근에 한계가 있는 일반투자자들의 피해가 가장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의 재무정보 담당자 등이 법을 핑계로 정보를 틀어쥐거나 긍정적 정보는 과장하고 부정적 정보는 숨기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이번 규제 강화로 그동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 거래자들을 처벌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도 나온다. 따라서 처벌 강화와 함께 정보 생산력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김중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보의 질과 양이 함께 늘어야 투자자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며 “금융투자업계뿐 아니라 기업들이 공시를 제대로 하도록 유도하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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