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카드 꺼낸 엘리엇, 삼성과 장기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주총결의금지 가처분 신청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선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삼성물산 지분(7.12%) 보유 공시를 낸 지 닷새 만에 ‘법정 소송’ 카드를 꺼내들었다.

엘리엇은 9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합병안이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삼성물산과 이사진에 대한 주주총회결의금지 가처분 소송을 내는 법적 절차를 시작했다”며 “이번 조치는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엘리엇은 이날 서울중앙지법에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물산 측은 “이미 예상된 시나리오 중 하나”라며 크게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다만 다음 달 임시주주총회에서 합병 승인을 받기 전까지 엘리엇과의 ‘세력 대결’이 불가피해진 만큼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 소송을 매개로 우호 지분 불리기 가능성

엘리엇은 법적절차를 밟게 된 이유에 대해 “합병안이 공정하지 않고 불법적이라고 믿는 데 변함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삼성물산이나 금융투자업계 모두 엘리엇의 진심은 ‘주주총회 무산’보다는 ‘세 결집’을 향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다음 달 17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9일까지는 주식을 사야 11일 확정될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9일은 엘리엇이 향후 우군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해외 투자자들이 지분을 추가로 매입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던 셈이다. 엘리엇의 소송 제기는 결국 다른 투자자들에게 ‘우리는 주주이익을 위한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4, 5일 이틀간 삼성물산 주식을 250만 주 이상 사들인 외국인 투자가들은 8일 순매도(4만2875주)에 나섰다가 9일 다시 대규모 순매수(47만6600주)로 돌아섰다. 엘리엇의 전략이 국내 기관 및 개인 투자자들보다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상당부분 통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법원이 이번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광수 미래에셋증권 연구위원은 “한국은 외국과 달리 합병 비율이 해당 시점의 시장가격에 따라 자동적으로 결정된다”며 “설령 삼성그룹이 삼성물산 주가가 가장 낮을 때 합병을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도의적 문제일 뿐 법률적, 절차상 하자를 제기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물산은 엘리엇 측이 제기한 소송 관련 서류를 정식으로 전달받으면 법무팀을 중심으로 면밀하게 검토한 뒤 법적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 세력 결집 통한 2차 지분 경쟁 본격화

엘리엇이 지분 공시를 한 4일부터 9일까지 외국인 투자가들의 순매수 규모는 294만6381주에 이른다.

▼ 주총앞둔 勢결집 경쟁… 국민연금 등 행보 촉각 ▼

전체 발행 주식 1억5621만7764주의 1.89%에 해당한다. 만에 하나 이들 모두가 ‘합병 반대’에 동조하는 세력이라고 가정한다면 엘리엇은 자신들이 보유한 지분 7.12%를 더해 9% 이상의 세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삼성물산 지분을 모두 합쳐도 13.99%(6월 1일 기준)밖에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지금까지는 우군들의 지분을 늘리기 위한 ‘1차 지분 경쟁’이었다면 앞으로는 기존 투자가들을 서로 우호 지분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2차 지분 경쟁’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삼성물산 지분 9.98%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이 이번 사안에 대한 판단을 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열어 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최근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의 한국전력 부지 매입 문제와 관련해 위원회가 현대차 사내 이사 재선임안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 의견을 표명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이번 합병이 제일모직에 비해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다는 게 표출된 만큼 국민연금이 무조건 찬성할 수도 없고, 반대로 합병에 반대하면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손실을 입게 된다”며 “현대차 경우처럼 또다시 찬성이나 반대 의견을 표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창덕 drake007@donga.com·정임수 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