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약! 한국기업]금호아시아나, R&D 집중투자 ‘기술명가 금호’로 재도약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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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타이어는 미국 조지아 주에 연산 400만 개의 생산능력을 갖춘 공장을 건설 중이다. 2016년 초 준공해 세계 최대 타이어 시장인 북미 지역을 공략할 계획이다. 금호 타이어 미국 공장 예상도. 금호아시아나그룹 제공
금호타이어는 미국 조지아 주에 연산 400만 개의 생산능력을 갖춘 공장을 건설 중이다. 2016년 초 준공해 세계 최대 타이어 시장인 북미 지역을 공략할 계획이다. 금호 타이어 미국 공장 예상도. 금호아시아나그룹 제공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다시 일어설 때 강해졌습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해 1월 금호건설 전략경영세미나에서 임직원들에게 한 말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세 번의 위기를 극복하며 발전해왔다. 먼저 1979∼1980년 마이너스 경제성장 당시 강력한 구조조정 끝에 1984년 그룹 체제를 정비했다. 이에 따라 1988년 제2민항 사업자로 선정될 정도로 강해졌다. 1997∼1998년 외환위기 때는 금호타이어를 팔았다 되사오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2008∼2009년에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경영권 분쟁으로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하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해 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 아시아나항공의 자율협약을 졸업하면서 경영정상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박 회장은 올해 경영방침을 자강불식으로 정했다. 그는 1월 전 계열사 임직원들과의 전략경영세미나에서 “자강불식은 자신을 강하게 하는 데 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며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뛰어야 한다. 순간순간마다 자신을 강하게 하기 위해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출발은 광주택시다. 창업자 박인천 회장은 1946년, 자본금 17만 원으로 미국산 중고택시 두 대를 사들였다. 2년 뒤에는 광주여객을 세워 버스운수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박 회장은 타이어 수입량이 급감하자 1960년 금호타이어를 세웠다.

1988년에는 아시아나항공을 세우며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이에 앞서 광주고속(현 금호고속)은 1974년 한남고속을 인수하며 당시 업계 선두였던 한진고속을 제치고 고속버스 업계 정상에 올라섰다. 금호타이어도 1974년 국내 최대 타이어 메이커로 부상했다.

현재의 박 회장은 2002년 9월 4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외환위기 이후 그룹 구조조정이 한창이었던 때였다. 그는 취임식에서 “계열사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짓고 기존 사업구조를 고부가가치 사업군으로 전환해 그룹의 재무구조와 수익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금호그룹은 2004년 1월 1일 명칭을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바꿨다. 금호타이어가 세계 10대 메이커로 자리 잡고 아시아나항공이 세계 최대 항공 동맹체인 스타얼라이언스에 가입하자 이미지 통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였다. 박 회장은 2006년에는 그룹 창립 60주년을 맞아 슬로건을 ‘고객과 함께 아름다운 미래로 비상하는 아름다운 기업’으로 정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해 말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워크아웃 동안 금호산업은 적극적인 해외 진출이나 신규 사업보다 수익을 안정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공공수주에 집중함으로써 내실이 탄탄한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금호타이어는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연구개발(R&D)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2013년 업계 최초로 수도권인 경기 용인시에 중앙연구소를 열고 R&D 역량 강화를 통한 ‘기술 명가 금호’로의 재도약을 선언했다. 특히 일본 요코하마고무와의 기술제휴를 진행하고 미국 조지아공장 건설에 착수하는 등 미래 성장을 위한 준비도 했다. 아시아나항공도 경영정상화 기간에 재무구조 개선 작업과 미래 성장을 위한 준비를 열심히 했다. 특히 대규모 투자가 동반되는 A380을 도입해 중장거리 노선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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