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 ‘부채공룡’ 꼬리표 떼고 성공모델로 거듭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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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업그레이드]

경기 성남시 분당구 돌마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사옥 1층에 들어서면 가로 7m, 세로 2m의 대형 전광판이 눈에 띈다. 금융부채(이자를 내야 하는 빚) 현황이 매일 공지되는 이른바 ‘LH 부채시계’다. 미국이 국가부채의 심각성을 경고하기 위해 1989년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설치한 것을 본떴다. 100조 원을 넘던 숫자는 지난해 말 첫 자릿수가 ‘9’로 바뀌었다. 2009년 공사 출범(토지공사·주택공사 통합) 후 늘어나기만 하던 금융부채가 처음으로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LH가 ‘부채 공룡’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공기업 정상화 성공모델로 재평가받고 있다. 판매증가와 방만경영 개선, 사업다각화 등을 통한 부채 감축의 속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LH에 따르면 지난해 초 105조7000억 원에 달했던 금융부채는 24일 현재 96조8000억 원으로 감소했다. 작년 한 해에만 7조2000억 원을 줄였다. 출범 이후 2013년까지 연평균 7조6000억 원씩 금융부채가 증가하던 것과 대조적이다.

금융부채가 줄어든 것은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활을 건 총력판매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재영 LH 사장은 2013년 6월 취임 이후 ‘판매목표 관리제’를 도입했다. 이 사장이 매년 본사 9개 사업·판매담당 부서장, 22개 지역·사업본부장들과 1 대 1로 판매경영계약을 맺고, 주택·토지 판매실적을 인사와 인센티브에 반영하는 제도다.

그 결과 LH는 지난해 27조2000억 원어치의 토지·주택을 판매하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뒀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도 3월 초부터 총력판매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LH는 또 지출을 합리적으로 줄이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민간과 경합하는 사업은 축소하고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사업은 폐지했다. 무작정 사업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민간자본을 참여시켜 공공임대 리츠, 대행개발 등 새로운 사업방식을 도입했다. LH는 사업비를 연간 20%가량 줄이고, 민간 영역도 개발수익을 공유하는 상생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이를 통해 LH는 지난해 약 4조 원의 현금흐름 개선효과를 거뒀고, 2017년까지 8조8000억 원의 민자를 조달해 부채 감축과 민간투자 활성화를 동시에 달성할 계획이다.

강도 높은 경영혁신으로 허리띠도 졸라맸다. LH는 대형 공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노사 합의를 통해 방만 경영을 개선하기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직원들의 자녀 학자금 지원, 휴직급여 등을 대폭 축소했다.

이 같은 부채 감축의 성과는 신용등급 상승으로 이어졌다. 무디스·스탠더드앤드푸어스(S&P)·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이 모두 지난해 LH의 신용등급을 한국 정부와 같은 수준으로 상향했다.

올해 LH는 정부 정책사업을 원활히 추진하면서 부채도 줄이는 등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올해 사업예산은 지난해보다 2조 원 증가한 17조2000억 원으로 편성했다. 기업형 임대주택과 행복주택 등 굵직한 정책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주요 택지·주택사업지구 사업단계별, 연도별, 제품유형별 사업손익 개선을 관리하는 ‘사업 목표손익 관리제’를 추진해 사업건전성도 확보할 계획이다.

이 사장은 “외부의 압력이 아닌 자발적인 혁신을 통해 경영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4월 경남 진주로 본사를 이전하는 것을 계기로 조직의 분위기를 일신해 새롭게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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