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칼럼]듀폰은 어떻게 ‘세계최고의 안전일터’가 되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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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는 대한민국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참사 발생 후 3주가 지났지만 선장과 선원들의 어처구니없는 대응은 물론이고 정부의 부실한 재난대응체계, 무사안일주의에 대한 원성과 비판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리스크 관리의 시작은 위기 요인을 제때 감지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딜로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기업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고의 약 80%는 경영자의 실수에 의해 일어나고, 그중 80%가 경계심 또는 상황에 대한 인지도가 부족해 발생한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2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장수 기업 듀폰의 사례를 참고해 볼 만하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듀폰은 매우 체계적인 ‘리스크 지도’를 만들어 놓고 위기 발생 시 조기경보를 울릴 수 있는 업무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구현하고 있다. 즉, 회사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리스크를 크게 사업모델(글로벌 비즈니스 전략, 아웃소싱 선정 등), 시장(신용등급 이자율 변동, 시장점유율 등), 이벤트(법규 규제, 분쟁 소송 등), 운영(시스템 중단 및 장애, 자연재해 등) 등 4가지로 유형화하고, 수십 개에 달하는 하위 리스크들을 세부적으로 정의해 놓고 있다. 체계적인 리스크 대응 매뉴얼을 갖고 있는 건 물론이다. 위기 상황 정의부터 위기 대응팀 구성, 담당자별 행동 수칙, 연락 체계 등이 상세하게 짜여 있어 위기 발생 시 정해진 명령체계와 명확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다.

듀폰이 오늘날 리스크 관리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경영철학의 공로가 크다. 이는 당장 듀폰 사무실에만 가 봐도 쉽게 드러난다. 듀폰에선 사무실 어디에서도 문턱을 찾아볼 수 없다. 직원들이 혹시라도 문턱에 걸려 넘어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모든 유리문에는 안전유리용 접합필름이 들어 있다. 만에 하나 태풍이 와서 유리문이 깨져도 파편이 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비상 대피로 안내 및 안전교육은 전 세계 듀폰 사업장의 의무 사항이다.

교육 내용 중엔 필통에 필기구를 꽂을 때에는 손이 찔리지 않도록 반드시 펜촉을 아래로 향해 꽂아야 한다는 등의 자잘한 사항까지 포함돼 있다. 문서로 된 정책을 현실로 실체화시킨다는 목표 아래 사소한 내용까지 정해 놓은 덕택이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일터’라는 듀폰의 명성 뒤에는 리더의 강력한 의지와 솔선수범이 자리 잡고 있다. 듀폰 설립 당시인 19세기 초만 해도 노동자들 사이에선 술을 먹고 일하는 게 관행이었다. 이 회사 창업자인 E I 듀폰은 안전이 최우선 가치임을 강조하기 위해 근무 중 음주 흡연 금지 등 안전규칙을 명문화해 직원 계도에 힘썼다. 그뿐만 아니라 아예 공장 한가운데에 집을 짓고 살았다.

그러다 1818년 3월 19일, 공장 직원 한 명이 낮술을 마시고 일하다 폭발 사고를 일으켰다. 이 사고로 당시 공장 직원의 3분의 1이 사망했고, 듀폰의 부인과 어린아이까지 큰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듀폰은 그런 일을 겪고도 부서진 집을 수리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살았다고 한다. 이 사고 때문에 재정적으로 매우 힘들었지만 공장 안전을 위한 투자를 더 확대했고 근무 중 음주 위험에 대한 직원 교육을 한층 강화했다. 사망한 근로자의 유족들을 위한 연금제도까지 만들어 책임 있는 기업 시민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이 같은 듀폰의 진심은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대형 폭발 사고 이후 공장의 강 건너에 살던 사람들까지 하나둘씩 공장 옆으로 이사를 오는 등 듀폰의 가치에 동참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말로만 ‘안전’을 공허하게 외치며 정작 안전불감증에 빠져 계속 똑같은 사고를 반복하는 대한민국의 기업과 공공기관 리더들이 곰곰이 되새겨볼 대목이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이방실#듀폰#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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