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韓-칠레 FTA 10년… 농민도 정부도 틀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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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거라던 포도농가 소득 2배로… 과일농 폐업지원금 2400억 ‘헛돈’
개선될거라던 무역적자는 4배로… 지나친 비관-낙관 모두 허상 판명

노무현 정부 첫해였던 2003년 전국 곳곳은 농민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그해 2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합의문서에 양국이 공식 서명한 뒤 농민들이 “국내 농가가 공멸할 것”이라며 거리로 나선 것이었다.

정부는 FTA의 경제적 효과를 내세워 반대 여론 잠재우기에 나섰다. 국내 포도 성수기인 5∼10월에는 관세를 45%로 유지하는 ‘계절 관세’를 칠레산 포도에 적용하기로 했지만 성난 농심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포도, 복숭아, 키위 시설(비닐하우스) 농가에 대해 폐업 지원금 제도라는 파격적인 보상책이 등장했다.

한국의 첫 FTA였던 한-칠레 FTA가 다음 달 1일 발효 10년을 맞는다. 한-칠레 FTA는 한국이 글로벌 FTA 중심 국가(발효 9건, 협상 타결 2건)로 거듭나는 초석이 됐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협상 및 국회비준 과정에서 큰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최근 국내 최대 포도 산지인 경북 김천시와 충북 옥천군, 영동군을 찾았다. 한-칠레 FTA의 최대 피해자로 꼽혔던 포도 농가들은 “다 망한다기에 반대시위에도 참가했는데 정작 FTA 피해는 거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포도 농가의 단위 면적당 소득은 10년 만에 2배로 늘어났다.

정부가 2004∼2010년 국내 농가에 지원한 폐업 지원금은 모두 2400억 원에 이른다. 복숭아 농가에 폐업 지원금으로 1800억 원이 나갔지만 칠레산 복숭아는 검역 문제 때문에 단 한 개도 수입되지 않았다. 폐업했던 포도 농가들도 동일 작물 재배 제한기간인 5년이 끝나자마자 대부분 다시 포도나무를 심었다. 과장된 피해 우려로 헛돈을 쓴 셈이다.

FTA 효과에 대한 정부의 예측이 빗나간 부분도 있었다. 당시 정부는 FTA 이후 칠레와의 무역수지가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지만 소비재 수출량보다 원자재 수입량이 급증하면서 적자폭이 2003년 5억4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22억 달러로 커졌다.

동아일보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현대경제연구원 등 9개 정부출연 및 민간 연구기관 전문가 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전문가들은 ‘한미 FTA 등을 위한 예행연습’(34.8%), ‘세계 자유무역 트렌드에 합류한 것’(29.2%) 등을 한-칠레 FTA의 긍정적 측면으로 꼽았다. 부정적인 면으로는 ‘경제적, 사회적 효과 미미’(42.0%)와 ‘엄청난 사회적 갈등비용 초래’(22.9%) 등을 지적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이익단체의 지나친 개입이나 잘못된 분석은 협상 자체를 불리하게 이끌고 제대로 된 피해 대책을 마련하는 데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정부도 조만간 한-칠레 FTA의 효과에 대해 분석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한중 FTA 협상 등에 그 결과를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옥천·영동=김창덕 drake007@donga.com   

김천=권기범 기자
#칠레#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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