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포도나무 다 베어냈던 농가의 90% 5년뒤 ‘포도’로 U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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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칠레 FTA 10년]포도농사 망할거라던 농촌 지금은

“포도나무 베어낸 자리에 수박도 하고 토마토도 했습니다. 나중엔 고추까지 더해 돌려짓기도 해봤는데 인건비도 못 건졌습니다. 5년간 폐업 지원금 1억5000만 원 다 날리고 결국 포도로 돌아왔죠.”

충북 옥천군 동이면에 사는 임현재 씨(51)는 2006년까지 시설(하우스) 1만6500m²(약 5000평), 노지 1만 m²(약 3000평)에서 캠벨 포도 농사를 지었다. 그러다 2007년 하우스 내 포도나무를 모두 베어냈다. 2004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후 몇 년간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임 씨는 2012년 포도나무를 다시 심었다. 폐업 지원금을 받은 뒤 같은 작물을 재배하지 못하게 한 5년 기한이 끝난 직후였다. 임 씨는 “여전히 포도 시황이 괜찮았고 캠벨보다 단가가 높은 자옥이나 청포도를 키우면 승산이 있겠다 싶었다”며 “사실상 처음으로 본격 수확하는 올해는 폐업 전보다 소득이 30% 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2004∼2010년 옥천군에서 폐업 지원금을 받았던 포도 하우스 농가는 약 200곳. 이 가운데 90% 이상이 5년 기한이 끝난 뒤 포도농사로 복귀했다.

○ 허공에 날아간 2400억 원


칠레산 포도 수입량은 2003년 1365만 달러(약 145억 원)어치에서 지난해 1억4400만 달러어치로 10년 만에 10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수입은 비수기인 겨울철에 집중됐다. 계절 관세 때문이다. 한-칠레 양국은 국내 포도 성수기(5∼10월)에는 칠레산 포도의 기본관세 45%를 유지하고 비수기(11월∼이듬해 4월)에만 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했다.

정부가 2004∼2010년 폐업 지원 제도를 통해 하우스 농가에 지급한 돈은 2400억 원에 이른다. 복숭아 농가가 1만4903호(총 1796억 원)로 가장 많았고, 포도와 키위 농가가 각각 1506호(530억 원)와 397호(51억 원)였다.

하지만 복숭아는 검역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칠레로부터 단 1kg도 수입되지 않았다. 실체 없는 우려 탓에 국내 복숭아 농가들은 스스로 나무를 베어냈고 1800억 원에 이르는 정부 예산이 투입됐다. 농림축산식품부 측은 “2003년 당시에는 2008년쯤 복숭아 수입 금지가 해제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피해 보전을 미리 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4년 포도 가격이 크게 하락하면 정부가 평년 시세의 80%까지 보장해주는 소득보전직불제도도 생겼지만 지금까지 한 푼의 예산도 집행되지 않았다. 포도 값이 그런대로 잘 유지돼 왔다는 뜻이다.

○ 포도 농가 소득 10년 만에 두 배로

국내 포도 재배면적은 2003년 2만4801ha에서 지난해 1만6931ha로 31.7% 줄었다. 하우스 재배면적은 늘었지만 노지 재배면적이 감소했다. 노지 재배면적이 줄어든 것은 FTA의 영향 때문만으로 볼 수는 없다. 2000년 2만8085ha, 2001년 2만5578ha, 2002년 2만4569ha로 FTA 체결 전부터 이미 감소 추세였기 때문이다. 농가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포도농사를 대물림하는 경우가 급격히 줄었다. 또 전국 최대 포도산지인 경북 김천시의 경우 2007년 혁신도시 지정을 앞두고 인근 지역에 부동산 광풍이 분 것도 재배면적 감소를 부채질했다.

반면 포도 농가 소득은 크게 높아졌다. 노지 재배농가의 경우 1000m²당 연간 소득이 2002년 225만 원에서 2012년 435만 원으로 거의 2배 가까이로 뛰었다.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는 하우스 재배농가도 2002년 1000m²당 489만 원의 소득을 올렸지만 2012년에는 이보다 30.3% 높은 637만 원을 벌었다. 시설과 노지를 모두 합한 평균소득 증가율은 10년간 94.3%에 이른다. 이는 수입 금지품목인 사과(77.0%)와 배(79.4%) 농가의 소득증가율을 상회하는 수치다.

○ 국내산 포도 경쟁력 상승

국내 포도 농가의 소득이 증가한 데는 상당수 농가가 캠벨 포도 대신 거봉과 청포도 등 고소득 품종을 대거 도입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김천시 개령면의 나채효 씨(56)는 원래 하우스 6600m²와 노지 9900m²에서 캠벨만 재배했다. 그러다 6년 전 하우스 재배품종을 모두 자옥으로 바꿨다. 6월 초에 출하된 하우스 캠벨은 5kg 한 상자에 2만∼3만 원을 받지만 자옥은 포장이 작은 2kg 한 상자에 캠벨보다 2000∼3000원을 더 받는다. 나 씨는 “우리 포도를 잘 키워서 맛으로 승부하니까 칠레가 아니라 중국하고 FTA 한다고 해도 별로 걱정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천시 봉산면에서 포도농사를 40년째 짓고 있는 정창화 씨(67)도 10년 전 캠벨에서 거봉과 청포도로 품종을 바꿨다. 정 씨는 “주로 고품질 상품을 인터넷을 통해 파는데 이 양이 전체 판매량의 35%쯤 된다”며 “품질을 개선하고 판매망도 다양화해서인지 FTA 때문에 피해를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서해동 농림부 농업정책과장은 “농산물의 경쟁력은 가격보다는 품질과 안전성이 좌우한다는 게 FTA 10년이 농업계에 가르쳐 준 가장 큰 교훈”이라고 말했다.

옥천=김창덕 drake007@donga.com   

김천=권기범 기자
#포도 농가#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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