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대로 사인했더니 모험투자 승낙이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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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회사채-CP 투자 피해자들 “동양증권이 투자성향 테스트 조작”
설문 유도-문서변조 의혹 제기

내 돈 돌려달라” 동양그룹 계열사의 회사채에 투자한 개인투자자 1800여 명이 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감독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동양그룹이 부실을 숨긴 채 안전하다고 속여 금융상품을 팔았고 금융당국이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투자자들은 집회 도중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내 돈 돌려달라” 동양그룹 계열사의 회사채에 투자한 개인투자자 1800여 명이 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감독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동양그룹이 부실을 숨긴 채 안전하다고 속여 금융상품을 팔았고 금융당국이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투자자들은 집회 도중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고객님, 그렇게 체크하시면 이 상품 가입 못 합니다.”

60대 투자자 A 씨는 올 3월 동양증권 지점에서 서류를 작성하다가 직원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5년간 자산관리종합계좌(CMA)에만 돈을 넣었던 A 씨는 연 8% 금리를 제공한다는 동양인터내셔널 기업어음(CP) 홍보 문자메시지를 받고 창구를 찾았던 터였다. 동양인터내셔널은 당시 신용등급이 B로 투기등급이었다.

직원이 하라는 대로 투자성향 테스트 설문을 작성한 결과, A 씨는 ‘적극투자형’에 해당한다고 나왔다. 이 투자 유형은 투기등급 상품 투자에 별다른 제한을 받지 않는다. A 씨는 “동양그룹이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한 상품이라고 해서 직원의 권유대로 체크했을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동양그룹 회사채·CP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 동양증권이 투자성향 조사 서류를 허위로 작성하도록 유도했거나 심지어 변조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품의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해 도입된 투자성향 진단이 거꾸로 투자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함정’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50대 투자자 B 씨는 평소 예금·적금 외에는 투자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증권사 투자성향 테스트에서도 ‘안정형’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하지만 B 씨는 9월 추석 연휴 직전 동양증권 직원에게서 동양그룹 CP에 가입하라는 안내 문자메시지를 받고 상품에 가입했다. 증권사가 자신의 투자성향을 잘 알 것으로 판단했고, 원금에 이자를 더해 주는 상품이라는 설명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동양 사태’가 터진 뒤 B 씨는 증권사를 찾아 서류를 확인하다 깜짝 놀랐다. ‘안정형’으로 진단받은 투자성향 테스트 항목 바로 밑에 ‘부적합 금융투자상품 투자 확인’ 항목이 체크돼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 판단에 따라 자신의 성향보다 위험도가 높은 상품에도 투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직원이 형광펜으로 칠하며 “사인하시면 된다”고 권유해 그냥 사인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금감원 “동양증권 불완전판매 엄정 조치할 것”

또 다른 50대 투자자 C 씨는 투자성향 진단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전화로 CP 투자를 권유받아 투자했다가 낭패를 봤다. 증권사에 물어보니 C 씨는 ‘적극투자형’으로 분류돼 있었다. C 씨는 2008년에 자신이 주식형 펀드에 가입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증권사 직원이 임의로 ‘적극투자형’으로 분류한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모든 금융투자회사는 2009년 제정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에 따라 금융 상품에 가입하려는 고객에게 반드시 투자성향 테스트를 해야 한다. 증권사는 투자자 성향에 맞는 투자 권유만 할 수 있다. 원금 손실을 거부하는 투자자에게 주식형 펀드를 권할 수 없는 식이다. 이를 위반할 경우 ‘불완전판매’로 간주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최고 직원 면직에 해당하는 징계를 받는다.

피해자들의 주장대로 동양증권 직원들이 설문을 하기도 전에 투자 권유를 하거나 직원이 설문의 답을 유도했다면 큰 문제다. 일부 투자자는 “엉뚱한 필체로 설문이 작성돼 있는 걸 확인했다”며 문서를 변조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이에 대해 동양증권 관계자는 “상품 판매를 할 때 반드시 투자성향 설문을 작성하도록 의무화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부 투자자들이 제기하는 ‘설문 답안 유도’나 ‘대리 작성’ 개연성에 대해서는 “상품 판매 과정을 일일이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확답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동양증권 특별검사를 통해 불완전판매가 있었는지 집중 추궁하고 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신고센터를 통해 투자성향 설문과 관련한 민원을 일부 접수했다”며 “위반 사실이 밝혀질 경우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훈·이원주 기자 january@donga.com
#동양증권#동양 투자#동양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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