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로 외환은행장이 전하는 ‘2X 카드’ 탄생 뒷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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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월만에 발급 100만장 돌파
“왠지 성인영화 등급 연상돼… 2X 이름 처음엔 퇴짜 놨죠”

“여기도 2X네요? 우리 회사 카드랑 이름이 똑같은데 우리한테 사용료 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윤용로 외환은행장(사진)은 이달 8일 집으로 향하던 중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헬스클럽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헬스클럽의 이름은 ‘2X 휘트니스’. 외환은행이 지난해 6월 내놓은 ‘2X 카드’와 이름이 같았다. 헬스클럽으로 불쑥 들어간 윤 행장. 그는 자신을 외환은행장이라고 소개했다. 다음 날 윤 행장이 헬스클럽에 보낸 것은 ‘상품명 사용료 요청서’가 아닌 벽걸이 시계였다. 시계에는 ‘2X 패밀리 인증 기념’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2X’란 이름만 보고 가던 길을 되돌아올 정도로 윤 행장의 ‘2X 카드’에 대한 자부심은 남다르다. 이 카드는 15일 출시 13개월 만에 발급 100만 장을 돌파했다. 전업 카드사가 아닌 은행이 내놓은 신용카드로는 이례적인 인기다. 2X 카드는 발급받아 사용한 지 6개월이 지나면 할인 혜택이 2배가 되는 상품이다. 커피전문점에서 25% 할인 받다가 6개월 후에는 반값에 음료를 살 수 있다.

2X 카드 성공에는 윤 행장의 애정이 한몫했다. ‘2X 패밀리 인증 기념’ 문구도 그가 디자인팀에 지시해 하루 만에 만들었다. 사실 이 카드에는 윤 행장의 깊은 고민이 묻어 있다.

○ 현장 직원만 믿고 선택한 이름 ‘2X’

지난해 2월 외환은행장에 취임한 윤 행장은 론스타 사태를 겪으면서 잃어버린 고객들을 되찾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판단했다. 그는 고객이 ‘정말 좋다’고 느낄 만한 신상품을 개발하라고 주문했다. 야근하는 직원들을 찾아 피자를 돌리기도 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오래 사용하면 혜택을 더 주는’ 개념의 카드였다.

새 상품이 설계된 뒤 상품명 후보로 나온 것은 ‘상상(上上) 카드. 최상(上)의 혜택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의미였다. 윤 행장은 시큰둥했다. “이름을 보자마자 특징을 알 수 있는 쉬운 이름을 생각해 보라”고 했다.

두 번째 후보가 2배의 혜택을 강조한 ‘2X 카드’다. 윤 행장은 이번에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포르노 영화를 뜻하는 ‘XXX’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윤 행장은 차라리 ‘X2 카드’가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개발자들은 ‘발음이 어렵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윤 행장은 외환은행 영업점 10곳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대부분의 직원이 은행장의 갑작스러운 전화에 당황하면서도 2X란 이름이 좋다고 말했다. 윤 행장은 직원들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 곳곳으로 퍼진 ‘2X’에 싱글벙글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온 2X 카드. 발급한 카드 수만큼이나 2X란 이름도 곳곳에 퍼졌다. 지난해 8월에는 걸그룹 ‘2X’가 데뷔했다. 이 그룹은 인터뷰에서 “팀 이름과 어울리는 광고를 찍고 싶다”며 ‘2X 카드’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동통신사인 KT가 진행 중인 ‘2배가 돼! 페스티벌’도 2X 카드와 비슷한 개념이다.

이번 달 현대카드가 내놓은 ‘X2 카드’에 대해서도 윤 행장은 “항상 혁신을 추구한다는 현대카드가 2X 카드를 참고한 것 같다”며 웃었다. 공교롭게도 2X 카드 이름을 정하는 과정에서 윤 행장이 제안했던 X2 카드와 이름이 같다.

현대카드는 “캐시백 적립에 제한이 ‘없다’는 의미로 X 카드를 만들었고, 여기에 혜택까지 더 늘린 X2 카드를 선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윤 행장은 기분 좋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외환은행#2X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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