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현명관 前삼성물산 회장 인터뷰 “업의 개념을 바꾸는 게 기업 혁신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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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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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은 “추격자인 한국 기업들이 경쟁에서 이기려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더해 우리에게만 존재하는 차별화 요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 전 회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신경영을 추진할 때 삼성그룹 비서실장을 맡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은 “추격자인 한국 기업들이 경쟁에서 이기려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더해 우리에게만 존재하는 차별화 요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 전 회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신경영을 추진할 때 삼성그룹 비서실장을 맡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선언한 ‘신경영’의 핵심 메시지다. 신경영은 양적 경영에서 질적 경영으로, 매출 위주에서 이익 위주로, 국내 제일에서 세계 일류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당시 이 회장이 신경영을 추진할 때 그 옆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있다. 바로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이다. 그는 1993년 10월부터 약 3년간 삼성그룹 비서실장을 맡아 이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다. 올 6월 신경영 선언 20주년을 앞두고 현 전 회장을 만났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25호(3월 15일자)에 게재된 인터뷰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6월이면 신경영 선포 20주년이 된다.

“사실 신경영은 프랑크푸르트가 아니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됐다. 1993년 1월 말 이건희 회장은 로스앤젤레스 출장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서팀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당장 미국으로 건너오라는 것이었다. 당시 삼성시계 사장이었던 나 외에 김광호 삼성전자 사장, 이대원 삼성항공산업(현 삼성테크윈) 사장 등 전자 관련 계열사 경영진도 똑같은 전화를 받았다.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첫날, 비서팀장은 우리에게 달러를 쥐여 주며 백화점과 마트에 가서 쇼핑을 하라고 했다. 다들 ‘왜 미국까지 불러서 난데없이 쇼핑을 하라고 하나’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도 공돈으로 실컷 쇼핑했다.

문제는 바로 그 다음 날이었다. 회장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전자 관련 계열사 사장단을 향해 질문이 쏟아졌다. ‘삼성전자 TV는 백화점 진열대 어디에 있습디까?’ ‘소니 같은 일류 제품과는 가격 차이가 얼마나 납디까?’ ‘판매사원이 고객에게 제품을 권유할 때 어느 브랜드 제품을 추천합디까?’ 등등. 그 다음 날엔 호텔 연회장을 통째로 빌려 TV,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제품을 모조리 분해해 진열해 놓고는 ‘TV 리모컨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버튼은 뭡니까?’ ‘무엇 때문에 삼성 TV는 3류 취급을 받고 있나요’라며 반나절 동안 쉴 틈 없이 사장단을 다그쳤다. 국내에선 1등이라고 자만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삼성은 꼴찌, 잘해봤자 3류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사장단 스스로가 깨닫게 하려고 했던 이 회장의 깊은 뜻을 그때에서야 깨달았다.”

―신경영의 핵심 철학은 무엇인가.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안타까운 건 현재 기업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의의 초점이 온통 지배구조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지배구조란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절대적으로 좋은 지배구조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기업 문화, 산업 특성 등에 따라 최적의 지배구조는 제각각 다르다. 비슷한 맥락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도 기득권을 가진 강자의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추격자인 우리가 경쟁에서 이기려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더해 우리에게만 존재하는 차별화가 플러스돼야 한다.”

―차별화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하나.

“호텔신라에서 일할 때의 경험에 빗대어 예를 들어보겠다. 호텔 단골 고객인 김모 사장이 차를 몰고 왔는데 도어맨이 ‘어서오세요’라고 인사하는 건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 단골 고객의 차 번호판을 외운 도어맨이 ‘김 사장님, 어서오세요’라고 반갑게 맞는다면 그건 차별화다. 한발 더 나가서 ‘김 사장님, 다시 뵙게 돼 반갑습니다. 신문을 보니 최근에 미국 출장을 다녀오셨다는 것 같던데 언제 돌아오셨습니까?’라고 말한다면 훨씬 고차원적인 차별화가 된다.

차별화는 업(業)에 대한 정의부터 새롭게 해나가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호텔업을 단순히 식당에서 밥 먹고 커피숍에서 사람 만나고 객실에서 잠잘 수 있게 해 주는 서비스업으로 정의한다면 호텔 직원들은 손님들에게 ‘어서오세요’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정도의 말을 친절하게 건네는 것으로 임무가 끝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호텔업을 ‘상대방을 알아주는 사업’이라고 정의해 보자. 김 사장을 알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식으로 서비스의 초점이 바뀌게 된다. 이를 위해선 김 사장의 차량 번호는 물론이고 과거 투숙 경력이나 식사는 뭘 했는지 같은 정보까지 훤히 꿰고 있어야 한다.

물론 업을 새롭게 정의하기만 한다고 차별화가 저절로 이뤄지진 않는다. 실제 조직원들이 차별화를 실행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한 예로 나는 호텔신라 재직 시절 ‘고객 차량번호 맞히기 대회’를 열어 도어맨들 대부분이 차량 번호를 외우도록 했다. 별것 아닌 일 같지만 작은 혁신의 불씨라도 전체로 확산될 수 있도록 제도와 시스템을 만드는 게 지도자가 할 일이다.”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보나.

“설득력이다. 리더의 비전, 리더가 생각하는 경영 목표를 조직 구성원들에게 전달해 그 사람들이 리더를 믿고 따르도록 해야 한다”

―설득력 있는 리더십을 갖추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인가.

“전문성이다. 처음 호텔신라에 부임했을 때 호텔에 대해 알 턱이 없던 나는 매일같이 오전 5시에 출근했다. 당시 직원들의 아침 교대근무 시간이 오전 7, 8시였지만 그보다 두세 시간 일찍 나와 23층 꼭대기부터 지하 5층 기계실까지 다 돌아다녔다. 소화기는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주방 냉장고는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는지, 행주와 도마 소독은 제대로 돼 있는지, 객실 화장실 청소는 깨끗하게 잘돼 있는지 등을 일일이 점검한 후 아침 회의에 들어갔다. 부하 직원보다 내가 현장 상황을 더 많이 알고 있으니 조직 장악력이 안 생길 수 없었다.”

―최고경영자(CEO)가 너무 세세한 사항까지 일일이 챙길 필요가 있나.

“삼성물산 부사장 시절 내 별명이 ‘현 대리’였다. 당시 경기 성남시 분당에 백화점(당시 삼성플라자 분당점)을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오전 2시에 관리자에게 문을 열게 해서 불시 점검을 했다. 푸드코트를 돌아보며 냉장고, 도마 등 어떤 곳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종이에 지적 사항을 적어 붙여 놓았다. 이런 불시 점검 이야기가 이건희 회장의 귀에 들어갔던 것 같다. 며칠 뒤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요즘 현 부사장을 현 대리라고 한다면서요?’라며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내가 불시 점검을 했던 이유는 식중독이나 안전사고처럼 미리 예방할 수 있는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안전 관리나 위생 관리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야 하는 중요한 업무라는 점을 피부로 느끼게 했다. 물론 CEO가 매일 매장을 돌아다닐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알고 맡기는 것과 모르고 맡기는 건 천지 차이다. 현 대리가 아니라 현 주사라고 불린다 하더라도 나는 CEO가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소소한 부분에서부터 전문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경영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25호(2013년 3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소셜미디어가 터준 협상의 물꼬

하버드비즈니스리뷰


가상회의 시스템을 판매하는 회사의 담당자가 물건을 팔기 위해 고객사 최고경영자(CEO)와 약속을 잡았다. 그 CEO는 이 회사 제품에 안 좋은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협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담당자는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기 직전 가상회의 시스템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상세히 분석해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고객사 CEO는 트위터를 통해 이 글을 읽었고 글을 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트인 협상의 물꼬는 거래 성사로 이어졌다. 소셜미디어는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포브스는 왜 삼성전자 폄하했나

Competitive strategy in practice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는 삼성전자가 새로운 제품을 내놓기보다는 경쟁자들이 이미 개발한 제품을 더 얇고 더 가볍게 만드는 데 급급해하고 있다고 폄하했다. 로이터통신은 삼성의 상명하달 방식이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시절에는 통했을지 모르나 독자적인 혁신이 필요한 오늘날에는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과연 삼성전자의 성과는 고유한 아이디어나 기술 없이 선도 기업들의 장점을 재빨리 모방한 것뿐일까. 삼성전자 사례를 통해 독특한 한국형 경영 모델을 제시한다.

DBR 웹사이트 www.dongabiz.com, 구독 문의 02-2020-0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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