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승계 도와드립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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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 87% “사업 잇기 희망” 66% “조세부담 너무 커”… 금융권, 세무 조언-후계자 육성 컨설팅 봇물

서울 구로구에서 비철금속 유통회사를 운영하던 김모 씨(62)는 지난해부터 건강이 급속히 나빠졌다. 그는 최근 가족회의를 열어 회사를 장남에게 물려주기로 했다. 1980년 창업해 밤낮없이 일해 키운 회사다. 김 씨는 “회사가 없어지면 종업원들도 일터를 잃는 것 아니냐”며 “청춘을 바친 회사가 대를 거치며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창업 1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하며 가업승계가 화두로 떠올랐다. 가업승계는 창업주의 경영 노하우와 기술력이 보존되고 고용도 유지되는 게 장점. 금융투자업계도 앞다퉈 가업승계를 위한 컨설팅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87.1%가 가업승계를 원한다. 가업을 승계하려는 이유로는 기술 및 경영 노하우 유지와 회사에 대한 애착 등이 꼽힌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의 경우 가족이 회사를 이어받지 않으면 공중 분해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성봉 서울여대 교수(경영학과)는 “회사가 존속하기 위해선 새로운 경영자가 나타나야 하는데 외부에서 능력을 갖춘 중소기업 경영자를 찾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창업주의 경영 철학과 노하우를 전달하는 데도 가족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가업승계를 두고 일각에서는 ‘부의 대물림’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는 분석도 많다. 창업주가 개발한 기술이 대를 거듭하며 발전해 국가 기술력 향상에 보탬이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1902년 창업한 일본의 ‘구레다케’를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먹과 붓 생산업체에서 시작한 이 회사는 먹 제조 기술을 활용해 각종 발광도료 등을 제작한 이후 연매출 700억 원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다.

고용 유지도 대표적인 가업승계의 순작용으로 꼽힌다. 신상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원은 “회사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건 일자리도 유지된다는 것”이라며 “가업승계를 통한 고용효과는 창업의 2.5배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고용시장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7.7%에 이른다.

가업승계를 원하는 수요자는 많지만 실제 가업승계를 진행 중인 중소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11년 전국 중소기업 최고경영자 3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업승계 현황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25.5%만이 실제로 가업승계를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업승계를 하려면 복잡한 세무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후계자를 미리 길러야 한다. 중소기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창업주의 66%가 조세 부담을, 25%가 후계자 역량 불확실을 가업승계의 장애 요소로 꼽았다.

정부는 2007년 ‘중소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중소기업의 가업승계를 지원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내용이 복잡해 많은 창업주가 가업승계를 포기하기도 한다. 2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의 수가 일본은 3146개, 독일은 837개에 이른다. 이런 기업이 나오도록 한국에서도 가업승계가 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무법인 다솔의 최영준 세무사는 “가업승계와 관련한 세법이 마련돼 있어도 워낙 복잡하고 요건이 까다로워 일반 중소기업주들이 따르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지난해부터 다양한 가업승계 컨설팅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하나은행,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세무 문제부터 후계자 육성에 이르기까지 가업승계의 전 과정에 대해 컨설팅을 하고 있다.

배정식 하나은행 신탁부 팀장은 “올해 들어 가업승계와 관련된 상담 건수가 2배 수준으로 늘었다”며 “회사 승계와 더불어 자녀에게 창업주의 자산을 분배해주는 서비스도 제공 중”이라고 말했다.

가업승계가 고용 유지 등 긍정적 효과로 이어지도록 감시감독 및 교육 체계가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대용 숭실대 교수(벤처중소기업학과)는 “이탈리아와 독일은 후계자가 경영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며 “가업승계의 순기능이 살아나야 부의 대물림이란 비판이 잦아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가업승계#후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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