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디지털]전자펜은 붓, 화면은 캔버스 “난, 갤럭시노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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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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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펀아트전’ 안승준 한양대 특임교수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회사원이 됐다. 그 시절엔 다들 그랬다. 가슴 속에 꿈 하나씩은 있었지만 먹고 사는 게 더 급했다. 번듯한 집, 근사한 차, 부모님의 좋은 자식, 내 자식에겐 남부럽지 않은 부모…. 모든 걸 장만하긴 했다. 하지만 ‘내 삶’은 없었다.

안승준 한양대 특임교수(58)는 이제야 내 삶을 찾았다. 그저 꿈인 줄만 알았던 그림 말이다. 모범생. 다른 말로는 그를 표현할 길이 별로 없다. 고교 평준화 전에 명문 경기고를 나왔고, 공무원이 세상의 으뜸이던 시절에 한국외국어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한국경제가 고속성장 신화를 쓰던 순간 삼성에 입사해 30년 이상을 근무하며 삼성전자 전무까지 올랐다.

2011년, 그에게도 은퇴 시기가 찾아왔다. 좀 쉬고 싶었다. 꿈이었던 그림까진 몰라도 사진이라도 배워보자며 사진 특강을 들으러 다녔다. 행복했다. 그런데 바쁜 삶이 멈추자 병이 찾아왔다. 지난해 6월 전립샘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병문안을 온 삼성전자 후배들은 선배보다 휴대전화부터 쳐다봤다. “아니, 아직도 이런 후진 걸 쓰세요?” 2010년에 나온 첫 ‘갤럭시S’ 모델을 쓰는 그에게 임원이 된 한 후배가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스마트폰 ‘갤럭시노트’를 선물했다.

병상의 시간은 지루했다. 남는 게 시간이었다. 그래서 전자펜이 달린 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의외로 재미난 게 장난감 같았다. 처음엔 자기 얼굴을 찍어 수염, 안경 등을 그려 넣었다. 낙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전자펜은 붓, 스마트폰 화면은 캔버스가 됐다. 삼성전자에 있을 때 특강으로 인연을 맺은 숙명여대 학생들은 ‘카카오스토리’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안 교수의 ‘장난’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멋져요”, “아마추어 화가 같아요”, “개인전 열어야겠어요” 등등 갖가지 칭찬은 겉치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돈보다 큰 보상이었다.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잠들기 전 5인치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작은 전자펜으로 선을 그리고 색을 입히다보면 대여섯 시간이 훌쩍 지나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취미는 퇴원한 뒤에도 이어졌다.

그러면서 새로운 기법도 터득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전자펜으로만 그리는 것보다 사진을 찍어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게 더 반응이 좋다는 걸 깨달았다. 9월에 그린 그림은 도로 위에 땅거미가 지는 시점을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 바탕이 됐다. 날이 어두워지니 하늘은 그럴싸하게 표현됐는데 도로를 달리는 차들과 도로 옆 언덕은 시커먼 그림자로만 나타난 것이다. 안 교수는 전자펜을 들어 차와 언덕에 윤곽선을 더했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전봇대와 전선은 오선지로 표현했다. 사진은 사진인데 회화 같은 사진이 완성됐다.

이 그림이 사진작가 이순심 씨의 눈에 띄었다. 이 씨는 “이런 게 디지털 아트”라며 자신이 관장으로 있는 서울 종로구 관훈동의 갤러리나우에서 개인전을 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4일 진짜 전시회가 열렸다. 작은 스마트폰으로 만들어 격자무늬까지 드러나는 액자 속 작품을 보러 관람객들이 찾아왔다. 관람객들은 안 교수의 그림 덕에 익숙한 일상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나란히 선 두 바위산은 두 산을 찍은 사진에 물결을 그려 넣어 마침내 서로 맞닿고야 마는 한 폭의 동양화가 됐다.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있는 유명한 조각 작품 ‘해머링 맨’은 스마트폰의 이미지 복사 기능을 이용해 마주본 두 명의 해머링 맨이 됐다. 그 둘은 사랑을 뜻하는 하트 표시를 함께 두드리며 담금질한다.

안 교수는 “나는 예술가가 아니지만 예술이란 게 아마 이렇게 우리 주위의 스쳐 지나가는 사물을 아름답게 다시 발견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며 “나처럼 평범한 많은 분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멀게만 느껴졌던 예술을 가까이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갤럭시노트#화가#안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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