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옷 수거함도 ‘강남스타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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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크코트-명품가방-양복 등 멀쩡한 제품 좌르르

11일 오전 경기 하남시의 한 헌 옷 하치장 옷더미에서 기자가 골라낸 브랜드 청바지와 명품 구두. 해지거나 찢어진 곳 없는 질 좋은 것들이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11일 오전 경기 하남시의 한 헌 옷 하치장 옷더미에서 기자가 골라낸 브랜드 청바지와 명품 구두. 해지거나 찢어진 곳 없는 질 좋은 것들이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11일 오전 경기 하남시 외곽의 한 헌 옷 하치장. 이곳에는 강남 등 서울 시내 아파트 5000여 가구의 헌 옷 수거함에서 나온 옷가지가 하루 평균 1, 2t씩 들어온다. 영하 8도의 강추위에도 ‘돈 되는’ 옷을 고르려는 작업 인부의 손길이 바빴다.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찾는 옷더미는 강남의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 나온 것이다. 다른 지역과 달리 새 옷과 다를 바 없는 데다 명품도 나오기 때문이다. 하치장을 직접 찾아 명품만 골라가는 ‘명품꾼’도 있다고 한다. 선택되지 못한 나머지 옷가지는 kg당 몇백 원 수준에 수출된다.

기자도 직접 옷더미를 뒤졌더니 리바이스 게스 등 유명 브랜드 청바지와 명품 상표 구두 한 켤레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신상’은 아니지만 해지거나 찢어진 곳 없이 새 옷처럼 말끔했다. 하치장 업주 엄모 씨(56)는 “겨울이라 오늘은 옷이 없는 편인데 봄가을이나 이사철에는 물량이 쏟아져 나온다”며 “강남 아파트에서 나온 헌 옷은 바로 입고 거리로 나가도 촌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과 수도권 고물상에서는 강남의 고급 아파트 단지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불황 속에도 그나마 ‘돈 되는’ 재활용품을 내놓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헌 옷은 폐지나 고철과 달리 시세가 일정한 데다 전용 수거함에서 나오는 명품 ‘로또’까지 기대할 수 있어 인기다. 중고가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밍크코트와 명품 가방,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양복이나 등산복이 수거함에서 종종 나온다고 한다.

서울 강남의 한 고물상 직원 이모 씨(30)는 “강남에선 입은 흔적이 없는 새 옷도 매일 나오는데 비싼 값에 팔 수 있어 좋긴 하지만 한편으로 씁쓸하다”며 “남 주기 아까운 심리에서인지 칼자국을 낸 비싼 옷도 발견된다”고 전했다.

고물상 직원의 ‘라이벌’은 강남 아파트 가정부나 경비원. 일부 가정에선 옷가지를 직접 수거함에 넣지 않고 이들에게 처리를 부탁한다. 그러면 이들은 비싼 옷을 골라낸 다음 고물상 업자를 조용히 불러 흥정을 시도하기도 한다.

헌 옷에서 나오는 부수입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 현금이나 금반지, 고급 시계, 상품권 등이 적지 않게 나온다. 고물상 업주 A 씨는 기자에게 직접 모은 금붙이가 담긴 주머니를 보여주기도 했다. A 씨는 “강남 사람들이 질려서 버린 헌 옷이 우리에겐 ‘노다지’다”라며 “고물상 업주 중엔 고급 승용차를 몰며 강남에 사는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아파트와 폐기물관리업체가 맺는 재활용품 수거 입찰 가격도 강남지역이 높다. 월 단위로 가구별 가격을 책정하는데 싼 곳이 1000원 수준인 데 비해 강남 고급 아파트는 7000∼8000원을 호가한다. 한 대형 폐기물관리업체 B 부장은 “강남 아파트는 입찰가가 비싸도 질 좋은 헌 옷뿐 아니라 폐지도 2, 3배 많이 나와 돈벌이가 된다”며 “입주자 대표나 관리사무소 소장에게 현금과 상품권 제공에 술 접대까지 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준형 민생행동연대 집행위원장은 “일부 몸집을 불린 업체들이 강남 아파트 계약을 독점하다시피 해 영세업체는 하청업체로 전락했다”며 “재활용품이 가난한 사람들의 오랜 생계수단인 만큼 정부의 보호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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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강남#고물상#헌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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