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산업이 새 희망이다]<上>국경 없는 서비스 수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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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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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언어의 벽? 세계 공감 서비스는 어디서든 통한다

일본 도쿄의 번화가 시부야 거리에 내걸린 삼성전자 ‘갤럭시노트2’ 광고(왼쪽 사진), 일본을 넘어 세계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모바일 게임업체 그리의 도리란도(오른쪽
사진 위)와 NHN재팬의 라인팝. 도쿄=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일본 도쿄의 번화가 시부야 거리에 내걸린 삼성전자 ‘갤럭시노트2’ 광고(왼쪽 사진), 일본을 넘어 세계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모바일 게임업체 그리의 도리란도(오른쪽 사진 위)와 NHN재팬의 라인팝. 도쿄=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15일 일본 도쿄(東京)의 번화가 시부야. 채 100m도 걷기 전에 삼성전자의 파란색 간판이 잇따라 눈에 들어왔다.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노트2’를 홍보하는 부스였다. 그 사이사이로 애플 ‘아이폰5’ 광고가 보였다. 판촉사원들은 “오늘은 예약 없이 아이폰5를 바로 사실 수 있습니다”라고 소리쳤다. ‘전자제품 왕국’ 일본의 스마트폰 시장을 점령한 것은 한국과 미국 제품이었다.

하지만 아이폰과 갤럭시S를 손에 든 사람들의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랐다. 지하철에서 만난 한 승객은 스마트폰 게임 ‘탐험 도리란도’에 푹 빠져 있었다. 일본의 스마트폰 게임업체 ‘그리(GREE)’가 만든 게임인데 워낙 인기가 높아 TV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다. 거리에서 마주친 일본 여고생들은 헤어지면서 서로 “라인해∼”라고 인사를 나눴다. 라인은 NHN재팬이 만든 ‘일본판 카카오톡’으로 무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이다.

전자제품 왕국의 위상은 흔들린 지 오래지만 죽은 나무를 양분 삼아 새싹과 꽃이 피어나듯 모바일 서비스 기업들이 탄생하고 있었다.

○ 문화장벽을 넘는 일본기업

“아마도 일본 최초로 해외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인터넷 기업일 겁니다.” 야마기시 고타로(山岸廣太郞) 그리 부사장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리는 옷과 식료품, 인테리어, 총이나 칼, 심지어 모험과 여행까지 판다. 특징은 이 모든 게 게임 속에서만 존재하는 가상의 제품이란 점이다. 이런 상품을 ‘가상재화(virtual goods)’라고 부른다. 이렇게 벌어들인 매출이 지난 회계연도(2011년 7월∼2012년 6월)에만 1582억 엔(약 2조1198억 원). 이 가운데 영업이익은 절반이 넘는 827억 엔에 이른다.

그리는 이 돈으로 지난해부터 공격적인 해외사업에 나섰다. 지난해 4월 미국의 경쟁자였던 오픈페인트라는 게임회사를 약 1억400만 달러(약 1133억 원)에 인수했다. 올해 10월에는 월트디즈니와 제휴해 그리에서 디즈니 캐릭터를 이용한 가상재화를 팔기 시작했다. 일본의 문화 콘텐츠는 과거 일본식의 독특한 캐릭터 디자인과 일본어라는 언어장벽 때문에 쉽게 세계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리는 이를 바꿔놓았다. 특히 인터넷 분야에서 그리, 디엔에이(DeNA) 같은 모바일 게임업체가 성공하면서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의 해외 매출은 지난해 본격적인 해외사업을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이미 전체 매출의 10% 가까이로 올라왔다.

야마기시 부사장은 “앞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과 다양한 지식재산권 확보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라며 “일본은 문화가 달라 서비스를 수출하기 어렵다고 할지 모르지만 다른 것은 겉포장일 뿐 비즈니스 모델은 세계 공통 언어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특히 외국에서 유선 인터넷이 발달하던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선 휴대전화를 이용한 e메일과 모바일 게임 등이 독자적으로 발전했던 것도 최근의 성장세에 도움이 됐다는 게 그리 측의 설명이다. 야마기시 부사장은 “일본의 성숙한 모바일 서비스 시장에서 쌓은 노하우가 세계의 모바일 시장에도 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는 이미 일본 외에 한국과 미국, 영국, 프랑스, 싱가포르, 브라질 등 8개국에 해외지사를 세웠다. 현재 그리의 전체 직원은 2000명 수준. 눈길을 끄는 것은 이 가운데 한국지사 인력만 200명이라는 점이다. 야마기시 부사장은 “스마트폰 사용자 수로만 보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일본을 향한 눈

그리 외에도 일본에서는 스마트폰 열풍을 이용한 다양한 성공사례가 나오고 있다. 그리와 1, 2위를 다투는 디엔에이는 물론이고 1위 포털 야후저팬, 일본의 토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믹시 등이 ‘스마호 화스토’(스마트폰 우선·Smartphone First)라는 전략을 세워 변신하는 중이다. 동남아로 뻗어나가는 ‘라인’은 이 중에서도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한국의 카카오톡을 연상시키는 라인은 한국 최대 포털 NHN의 일본지사인 NHN재팬이 만든 스마트폰 메신저 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개발부터 사업화, 운영까지 일본지사가 도맡았다.

모리카와 아키라(森川亮) NHN재팬 대표는 “쉬운 사용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UX(사용자경험) 디자이너가 설계해 쓰기 편한 게 특징”이라고 라인의 성공비결을 설명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서비스는 기능이 다양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많은 일반인이 쓰기 어렵다는 인식을 갖는다는 얘기였다.

라인에서도 ‘스티커’라는 가상재화를 판다. 메시지를 보낼 때 다양한 얼굴 표정 등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 또한 처음에는 일본적인 문화로 치부됐지만 대만,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19일부터는 그리나 디엔에이처럼 게임도 판다. 라인 게임은 나오자마자 일본 애플 앱스토어의 1∼3위를 차지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일본에서 가상재화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일본시장에 대한 해외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15일 도쿄에서는 실리콘밸리의 유명 정보기술(IT) 전문지 테크크런치가 콘퍼런스를 열었는데 미국 본사의 알렉시아 토시스 편집장이 직접 ‘일본 기업이 미국 언론에 소개되는 법’을 강의했다. 그는 강의에서 “일본에는 좋은 기업이 많은데 일본에만 갇혀 있지 말고 세계로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게임업체 스카이벨루가는 대표를 포함한 직원 4명이 모두 한국인이지만 아예 일본에서 창업한 일본법인이다. 이런 특이한 형태에 대해 신일하 스카이벨루가 대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세계시장에 게임을 팔 때 일본법인이라 하면 신용도를 높게 인정받고 투자를 유치할 때도 투자자가 한 번 더 봐준다”고 말했다. 경제규모 세계 3위의 거대한 일본시장이 주변 국가의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성공의 발판’도 마련해주는 셈이다.

도쿄=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일본#가상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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