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자동차를 실물로… 손끝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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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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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형상화 클레이모델 제작 ‘자동차 모델러’

자동차 디자이너가 그린 스케치를 보고 모델러들이 각자 맡은 분야에서 공업용 찰흙을 수만 번 붙였다 떼어내길 반복하며 차의 디테일을 완성해 나간다. 그렇게 해서 만든 클레이 모델을 바탕으로 출시된 쉐보레 스포츠카 ‘카마로’(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출처 한국GM 블로그
자동차 디자이너가 그린 스케치를 보고 모델러들이 각자 맡은 분야에서 공업용 찰흙을 수만 번 붙였다 떼어내길 반복하며 차의 디테일을 완성해 나간다. 그렇게 해서 만든 클레이 모델을 바탕으로 출시된 쉐보레 스포츠카 ‘카마로’(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출처 한국GM 블로그
지난달 말 찾은 인천 부평 한국GM 디자인센터의 한 작업실에는 한국GM의 북미 지역 수출 모델인 소형 해치백(뒷좌석과 트렁크가 합쳐진 차종) ‘아베오 RS’의 차체가 앞좌석까지만 만들어진 콘셉트카가 놓여 있었다. 완성차의 절반만 남은 모양새가 특이했다.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니 차체가 철이 아니었다. 찰흙으로 만든 클레이 모델(Clay Model·공업용 찰흙으로 만든 차)이었다.

○ 스케치 속 자동차를 해방시키는 모델러

이 클레이 모델을 만든 김국중 한국GM 디자인센터 모델실 상무(55)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의 직업을 소개할 때마다 난감하다고 한다. ‘자동차 회사에서 모델러(Modeler)로 일한다’고 하면 매번 상대방은 “정말 (당신이) 모델이냐”며 의아한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김 상무는 “일본에서는 자동차 모델러가 TV 광고에 등장하거나 기술 명장으로 뽑힐 만큼 인정받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자동차는 디자인, 엔지니어링, 모델링이 결합된 종합예술이다. 자동차 모델러는 ‘자동차 디자인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디자이너가 자동차 스케치에서 표현하려는 ‘느낌’을 읽어내 자동차 제작과정을 가장 창의적으로 구현한다. 디자이너가 작곡가라면 모델러는 연주가인 셈이다.

자동차 디자이너의 작업 도구가 연필과 종이라면 자동차 모델러의 도구는 찰흙과 조각 도구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동차 모델러를 영어 표현으로 조각가(Sculptor)로 부르기도 한다. 모델러는 자동차 디자인 도안을 보고 철제로 골격을 만든다.

스티로폼으로 형상을 만들고 그 위에 공업용 찰흙을 덮는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모델링이 시작된다. 각종 조각 도구로 실제 차와 흡사한 디테일을 표현한다.

자동차가 하나의 모델을 개발하고 양산 시스템까지 갖추려면 수천억 원의 투자가 소요되기 때문에 양산 시스템을 갖추기 전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클레이 모델을 만든다. 작업기간은 3∼6개월이 걸린다.

○ ‘감성 손맛’을 더해라

클레이를 깎아가는 조각 작업은 10개의 손가락 하나하나에 들어가는 힘과 각도에 따라 차에 대한 느낌이 달라진다. 모델러들은 작업을 하며 큰 면은 손바닥으로 수시로 만지면서 디자이너가 의도한 바대로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차의 표면에 생길 곡률(曲率·곡선의 굽은 정도)도 머릿속에 떠올린다.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찰흙 한 줌을 떼어내 차체에 바르고 또 깎기를 셀 수 없이 반복한다. 그렇게 만든 클레이 모델 차의 무게는 2, 3t에 달할 정도다.

한국GM 디자인센터 모델실 관계자는 “소비자가 차에 대해 느끼는 감성이 곡률 반경 0.3mm 이내의 미미한 차이에도 바뀔 정도로 세심해졌다”며 “최근 자동차회사들이 감성품질을 중요시하면서 모델링 작업의 중요도가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자동차 모델러는 국내에 200명 정도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모델러는 자동차업계에서 대표적인 ‘3D(기피) 업종’으로 꼽혔지만 국내 자동차산업이 세계 톱5 수준으로 성장하면서 요즘은 조각이나 자동차를 공부한 유학파들도 모델러의 길에 뛰어들고 있다.

김 상무는 4월 국내 자동차업계 모델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임원 자리에 올랐다. 고교 졸업 후 모델러 일을 시작한 1983년 당시만 해도 생각지도 못한 자리였다. 김 상무는 “모델링을 했던 자동차가 양산돼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을 볼 때 그 느낌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자동차#모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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