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原電정전’ 보고 누락자를 위기관리실장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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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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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 사실파악 못한채 고리1발전소장 본사 중책 발령

국내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이 고리원전 사고를 보고하지 않고 은폐를 시도한 현장 책임자를 본사의 위기관리실장에 임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고리원전 정전 사태가 벌어진 지난달 9일은 오후 정전 사고가 발생하기 전인 오전에 정부와 한수원이 ‘원전 고장 정지 재발 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한 날이어서 원전 당국의 위기관리 체계에 구멍이 난 것으로 드러났다.

한수원에 따르면 당시 고리 1호기를 책임진 문병위 고리제1발전소장은 사고 발생 직후 15분 안에 ‘백색 비상 발령’(위기경보 3단계 중 가장 아래 단계)을 내려야 함에도 이를 무시한 채 상급자인 정영익 고리원자력본부장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 내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한수원이 이달 2일 정기인사를 발표하면서 문 소장을 본사 위기관리실장으로 발령했다는 것이다.

본사 위기관리실장은 원전 사고를 비롯해 회사의 전반적인 위기 상황에 대응하고 관련 내용을 정부 부처 등 외부 기관에 전파하는 직위로 1급 간부가 가는 자리다. 중대한 원전 사고를 맞아 기본적인 보고 의무마저 지키지 않은 인물을 위기관리실장에 임명한 것이다.

지식경제부 고위 관계자는 “직전 위기관리실장은 ‘1급을’ 직급의 간부가 맡고 있었다”며 “‘1급갑’이던 문 소장이 사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일부러 위기관리실장에 지원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 소장은 정년퇴직을 2년 정도 앞둔 상황이다.

주무 부처인 지경부는 이번 정전사고가 발생한 날이 2월 9일이라는 점에도 크게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울진원전 1호기, 4호기와 고리 3호기, 월성 1호기 등이 줄줄이 고장난 것과 관련해 정부와 한수원이 합동으로 원전 고장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은 날이기 때문이다. 김종신 한수원 사장이 오전에 브리핑을 마치기가 무섭게 보란 듯이 이날 오후 8시 34분에 대형 사고가 터져 정부 대책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노후 원전의 계속되는 고장 결함에 대해 정부가 구조적인 문제를 정밀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무조건 책임자 처벌만 내세운 게 오히려 화를 키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문 소장은 1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고리 1호기를 안전하게 잘 돌려야 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너무 컸다”고 토로했다.

김 사장도 14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30년 수명이 다된) 고리 1호기의 수명을 연장하면서 비판 여론이 있었던 데다 후쿠시마 사태, 핵안보정상회의 등과 맞물려 책임자가 굉장한 심리적 부담을 느껴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자신의 향후 거취와 관련해서는 “총체적으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태는 마치 군대에서 통수권이 잘 지켜지지 않은 것과 같다”며 “원전은 안전성과 투명성이 있어야 하는데 굉장히 자괴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보고 시점에 대해선 “지난주 토요일(10일) 신임 고리원자력본부장에게서 ‘보고할 게 있다’는 말을 듣고 다음 날 오후 4, 5시경 본부장과 발전소장을 만나 사고 내용을 전달받았다”며 “지경부와 원자력안전위 등 정부 당국에는 12일 정식으로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사고 당시 비상디젤발전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원인은 압축공기에 있던 이물질 때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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