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발효 D-1]“관세혜택 큰 맞춤의류로 美시장 공략”… 재봉틀이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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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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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로 활력 되찾는 의류수출업체 현장 르포

쏟아지는 일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앞두고 국내 의류업체들이 바빠졌다. 9일 찾은 봉제공장 호성섬유의 직원들은 밀린 일감 때문에 연일 야근을 하고 있었다. 박옥준 호성섬유 사장(왼쪽)과 이 회사로부터 납품받아 수출하는 누리안인터내셔날의 최진오 부장(오른쪽)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쏟아지는 일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앞두고 국내 의류업체들이 바빠졌다. 9일 찾은 봉제공장 호성섬유의 직원들은 밀린 일감 때문에 연일 야근을 하고 있었다. 박옥준 호성섬유 사장(왼쪽)과 이 회사로부터 납품받아 수출하는 누리안인터내셔날의 최진오 부장(오른쪽)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자르르륵, 자르르륵….’

9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봉제공장 호성섬유. 4층 건물의 회사 내부는 여러 대의 재봉틀이 동시에 돌아가는 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이 업체에서 일하는 30명의 직원은 요즘 연일 야근을 하고 있다. 미국 수출 물량을 맞추기 위해서다. 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앞두고 바이어의 주문이 밀려 일손이 달린다.

박옥준 호성섬유 사장(55)은 “하루 600벌의 니트 의류를 만들 수 있는데 FTA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 도저히 주문 물량을 맞추기 힘들 것 같다”며 “사람을 더 뽑고 생산라인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목’을 맞은 의류 수출업체들이 부랴부랴 국내 봉제공장들과 손을 잡기 위해 애쓰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미 FTA 덕에 국내 의류업계에 활기가 돌고 있다. 의류업계는 FTA에 따른 관세 철폐 덕에 미국시장에서 값싼 중국산 등에 밀리던 한국산 의류가 다시 기지개를 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밀려드는 미국 바이어


“한국산을 쓰면 관세 혜택을 얼마나 볼 수 있나요?” “한미 FTA 협정문 정보를 보내주세요.”

같은 날 호성섬유가 납품하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 누리안인터내셔날. 드레스와 바지 등 여성용 의류를 미국에 수출하는 이 회사의 해외영업부 직원들은 밀려드는 미국 바이어의 전화에 응대하느라 분주했다. 쇼룸(전시실)을 새로 단장하는 등 한미 FTA에 대비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회사는 국내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서 의류를 만들어 90%가량을 미국에 수출한다. DKNY, 빅토리아시크릿 등 유명 패션 브랜드가 주요 고객이다.

최진오 해외영업부장은 “한미 FTA 발효 시점이 결정된 지난달 말부터 미국 바이어의 문의가 크게 늘었다”며 “전화 받고 e메일 답장하고 나면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어 요즘 매일 야근”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표정은 밝아 보였다. 그는 바이어 문의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한미 FTA 협정문의 주요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서류를 늘 옆에 끼고 일한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의류 제품은 최대 32.0%에 이르는 관세가 사라진다. 누리안인터내셔날이 수출하던 인조섬유 드레스와 팬츠에 붙던 관세 14.9%, 28.2%도 즉시 철폐된다. 지난해 1억 달러 수출탑을 수상한 누리안인터내셔날은 FTA 효과로 내년까지 미국 수출이 2배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5년, 10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관세가 철폐되는 품목까지 감안하면 수출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 FTA 맞춤형 제품 개발


누리안의 주요 고객은 값비싼 브랜드의 바이어들이었다. 하지만 한미 FTA로 요즘에는 중저가 브랜드들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 부장은 “현재 20개 미국 브랜드 바이어와 수출 협의를 하고 있다”며 “이들 중 일부는 현재 베트남에 주문하는 물량을 누리안을 포함한 한국 업체로 돌리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누리안은 한미 FTA를 계기로 회사 체질을 한 단계 높이고 매출을 극대화하는 전략 마련에 나섰다. 이 회사는 7명의 자체 디자이너를 동원해 드레스, 풀오버(상의) 등 각 제품과 원단별로 관세 혜택을 가장 크게 볼 수 있는 품목을 조합해 이를 미국 바이어에게 먼저 제안하고 있다.

예를 들어 면 소재로 된 풀오버나 카디건은 16.5%의 관세가 10년간 점진적으로 사라지지만 인조섬유(MMF) 소재로 된 것은 32%의 관세가 즉시 철폐된다. 따라서 혜택이 큰 인조섬유 카디건을 다양한 디자인으로 만들어 미국 바이어들에게 선보이는 식이다.

○ 수출업체 온기 봉제공장으로 이어져


전옥 누리안 R&D디자인실 차장은 “앞으로 자체 디자인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도 확대될 것”이라며 “현재 20% 수준인 자체 디자인 제품의 비중을 더욱 높이려 한다”고 말했다. 3명의 원사(原絲) 전문가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기존에는 관세가 높아 시도하지 않았던 울, 레이온 등 다양한 소재 개발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누리안의 활력은 국내 협력업체들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누리안은 호성섬유 등 국내에 3개의 협력업체를 두고 있다. 이 회사들도 조만간 주문 물량이 늘 것으로 보고 봉제 라인을 늘리고 공장 증설을 위한 용지 확보 등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의류업계는 모처럼 만난 FTA 호재에 들뜬 분위기다. 하지만 한미 FTA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한국 중소기업을 미국 시장에 알리는 체계적인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옥준 호성섬유 사장은 “우리가 먼저 정보를 줘 한미 FTA 발효 소식을 알게 된 미국 바이어도 적지 않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홍보를 더 강화하고 국내 봉제산업도 지원해야 의류산업이 제대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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