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세값에 헉! 부모가 내준단 말에 또 헉!”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19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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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본 한국 주택문화… “이것만은 이해 못해”

"전세는 꿈도 꾸지 못하고, 월세보증금을 만들기 위해 5년간 적금을 부어야 했어요."

"월세보증금 낼 돈이 없어 고시원을 전전하고 있어요."

월세 오피스텔에 사는 미국인 조셉 리트 씨(29)와 고시원에 둥지를 튼 일본인 소네 아이코 씨(26·여), 하숙집에 거주 중인 재미교포 유학생 제시카 남 씨(24·여)는 한국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이지만 집 문제와 관한한 국내 대학생과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한국생활이 평균 4년이 넘어, 나름대로 한국 생활의 요령을 터득했다고 자부하지만 한국의 주택문화에 대해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14일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들은 "전세라는 독특한 주택임대제도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전세보증금이 이렇게 비쌀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이구동성으로 비싼 보증금을 성토했다.

●집구하기는 '미션 임파서블'

한국외대 국제통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아이코 씨는 서울에서 생활한 5년간 이사만 5번을 했다. 맨 처음 구한 집은 학교 앞에 보증금 없이 월 40만 원을 내는 하숙집이었다. 이후 부모님이 부쳐준 500만 원과 한국인 친구 부모님이 빌려준 돈 등을 합쳐 숙명여대 근처에 보증금 1000만 원, 월 30만 원짜리 반(半) 지하집을 구했다. 하지만 2년 뒤 보증금을 더 올려달라는 주인 요구에 방을 빼야만 했다. "부모님께 돈을 더 보내달라고 했더니 너무 큰 돈을 외국으로 보내는 것에 부담스러워 하시더군요." 결국 아이코는 월 30만 원짜리 고시원으로 방을 옮겨야 했다.

한국에 온 지 6년이 되는 연세대 한국학과 대학원생 조셉 씨는 이대 앞에 오피스텔을 얻기 위해 1000만 원짜리 적금을 부었다. 그는 "영어학원 강사를 하면서 번 돈의 일부를 한국인 친구 명의를 빌려 5년간 적금을 부어 보증금 1000만 원을 겨우 마련했다"며 "현재 월세 81만 원은 동거하는 외국인 친구와 절반씩 나눠 내고 있다"고 했다.

미국 버지니아에서 태어난 재미교포 제시카 남 씨는 한국 친척의 도움을 받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집을 구했다. "오피스텔이나 원룸을 구하고 싶었지만, 딸을 멀리 보낸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학교 인근에 하숙집을 골랐아요."

한국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이들에게도 한국의 주택임대차제도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여름방학 때 미국으로 돌아가 두 달간 하숙집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집주인이 두 달 분 월세를 달라고 해서 너무 억울했다(제시카 남)"거나 "월세를 냈는데 전기와 물, 가스요금을 별도로 내야 하는 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조셉 리트)"고 했다. 또 "최소 수천만 원이 넘는 전세보증금을 2년 간 집주인에게 맡겨야 하는 게 미덥지 않은 만큼 한국 정부가 이를 보장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소네 아이코)"는 제안도 했다.

●'아파트 공화국? 그래도 아파트에 살고 싶다'

이들은 한국 학생들이 비싼 보증금과 월세를 어떻게 마련하는지가 무척 궁금했다고 털어놨다. 한국인 친구들이 보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별도로 애쓰는 노력이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술자리에서 한국인 친구들이 거의 대부분 "부모님이 보증금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스스럼없이 얘기할 때 놀라움 그 자체였다고 털어놨다.

[채널A 영상] “우리 애는 집에 있고 나는 일하고” 부모도 자식도 “휴…”

제시카 남 씨는 "외국에선 자녀 집을 위해 부모가 목돈을 내놓지는 않는다"며 "내가 부모로부터 1000만 원을 받으려면 부모님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해서라도 납득시켜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코 씨는 "일본 부모도 자녀를 위해 뭐든지 해주려고 하겠지만, 대출까지 받아 자녀의 주택보증금을 내주는 것은 한국에만 있는 일"이라고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정부가 주택 관련 정책을 쏟아내는 모습도 이들에게는 낯설다. 리트 씨는 "한국이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며 "한국에 직접 와서는 아파트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 다시 한번 놀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도 경제력이 생겨 한국에서 집을 살 수 있게 된다면 아파트에 살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리트 씨는 "서울 목동이나 서초구에 쾌적하고 전망 좋은 아파트가 많은데, 그런 데서 살아보고 싶다"고 구체적인 지명까지 거론했다. "북적거리는 하숙집에 지쳐 있다"는 제시카 남 씨는 "방이 많고 큰 아파트라면 장소와 상관없이 무조건 오케이"라고 말했다. 아이코 씨는 "경기 분당이나 일산에 있는 '롯데캐슬'에서 살고 싶지만 죽기 전까지 일해도 그런 아파트를 살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송충현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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