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엽 ‘辭則生’ 승부수로 팬택 구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팬택 CEO, 5년 만의 워크아웃 졸업 앞두고 돌연 “연말 회사 떠나겠다”

“5년 반 동안 어려운 시기를 거쳤다. 개인적으로 너무 피로하고, 체력적으로 감당 불가능한 상태여서 올해 말을 끝으로 회사를 떠나려 한다.”

6일 박병엽 팬택계열 부회장이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5년 반 동안 쉴 틈 없이 뛰어 겨우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 졸업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12월 31일 회사를 떠나겠다고 밝힌 것이다.

다소 피곤한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나선 박 부회장은 “사람이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며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전에 약속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버텼지만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3월까지 일하면 박 부회장은 987억 원에 해당하는 스톡옵션(전체 지분의 10%)을 받을 수 있다. 12월 말에 그만두면 한 푼도 못 받는다. ‘손해 아니냐’는 질문에 박 부회장은 “회사가 어려워진 뒤에 몸이 부서져라 일했던 제 성격을 이해한다면 (그 돈) 거머쥐겠다고 석 달 더 일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 것”이라고 말했다.

○ 박 부회장의 마지막 승부수


박 부회장은 팬택의 창업자이자 아이콘이다. 1991년 자본금 4000만 원으로 직원 6명과 무선호출기(삐삐) 회사로 시작해 3조 원 규모의 휴대전화 회사로 키워냈다. 자수성가형 최고경영자(CEO)의 표상이자 신화였다.

하지만 2005년 3000억 원에 SK텔레텍을 인수하는 등 ‘몸집 불리기’에 나서면서 한순간에 유동성 문제로 부도 위기에 놓였다. 결국 2007년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박 부회장은 모든 지분을 내놓고 ‘백의종군’에 나섰다. 창업자이지만 오너는 아닌, 경영인으로서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제 손으로 세운 회사를 살려보겠다는 승부수였다.

박 부회장은 이날 스톡옵션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채권단들은) 고마운 분들이지만 이자를 받았고, 저는 온 책임을 다하고 권한 없이 일해 왔지만 지난 5년 반 동안 이득이 없었다. 단지 회사에 대한 무한 책임의식뿐이었다”고 말했다. 이는 그동안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포함해 전 임직원이 노력해온 만큼 채권단에 금전적 보상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12월 말 워크아웃을 졸업하기 위해선 4500억 원에 이르는 부채를 상환해야 한다. 팬택계열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최근 유상증자를 시도했지만 사실상 무산됐다. 대부분 채권단인 주주들이 돈을 더 내놓는 것을 거부한 셈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팬택 내부에서 회사 전 직원이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어려운 상황을 견뎌내며 연구개발(R&D)까지 자체 조달해 왔는데, 대부분 채권단으로 이뤄진 주주들은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결국 박 부회장은 ‘사의 표명’이라는 초강수로 채권단이 워크아웃 졸업을 위해 희생을 같이해야 한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 골리앗과 이 악물고 싸우다


최근 스마트폰 시장은 ‘졸면 죽는다’로 표현된다. 팬택은 2007년부터 바짝 긴장한 상태로 버텼고, 2009년 애플 아이폰으로 업계가 휘청할 때에도 ‘베가’ 시리즈로 가까스로 틈새시장을 찾았다. 막강한 글로벌 회사인 LG전자 휴대전화 사업도 6개 분기 연속 적자를 내고 있다. 하지만 팬택은 올해 4분기(10∼12월)에도 흑자가 예상되고 있어, 18개 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워크아웃 상황에서 삼성이나 LG, 애플에 비해 R&D에 쓸 돈도 많지 않았지만 말 그대로 이를 악물었다. 박 부회장은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끝에 “일요일에도 오전 5시 30분에는 차를 타고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는 일상의 고단함에 지친다”고도 했다. 무박 3일 출장은 기본이었다. 전 직원의 위기의식으로 어려운 고비를 가까스로 견뎌냈다는 것이다.

박 부회장은 이날 “대주주가 책임 있는 경영을 하는 게 (우리 기업 환경에서) 적절할 것”이라며 사실상 ‘오너십’을 경영자가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사의 표명 후 휴식을 취하는 동안 투자 파트너 등과 조인해 오너십을 가져오겠다는 의지로 들렸다.

한편 박 부회장의 사의 표명에 산업은행 관계자는 “사표 내겠다는 통보를 받은 적이 아직 없다”며 “다른 경영자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