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칼럼]패스트패션이냐 슬로패션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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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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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서울 중구 명동에 문을 연 유니클로 명동중앙점은 개점 당일 매출액이 13억 원까지 치솟았다. 매장에 들어가려는 고객들로 긴 줄까지 늘어섰다. 깜짝 인기에 일본 본사 관계자도 놀랐다는 후문이다. ‘빨간 내의’ 대신 효도 상품으로 급부상한 1만9900원짜리 ‘히트텍’ 내의를 9900원에 판매하는 등 인기 상품을 20∼50% 싸게 파는 할인행사를 했으니 고객들이 줄을 서가며 입장할 만도 하다.

자라, H&M, 유니클로 등 패스트패션은 끼니를 뚝딱 해결하는 인스턴트 라면처럼 간편하고 매혹적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을 더 잘게 쪼개 최신 유행 스타일의 패션 아이템을 수시로 쏟아낸다. 매장에 갈 때마다 똑같은 옷이 별로 없다. 가격도 유명 브랜드보다 부담스럽지 않게 책정한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에겐 천국이 따로 없다. 패스트패션이 유행하면서 짧게 입고 빨리 버리는 의류 소비 패턴도 등장했다.

“덜 사고, 중고품을 사용하자(Buy less, buy used).”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패스트패션과는 정반대의 흐름도 등장했다.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인 파타고니아는 요즘 필요한 만큼만 옷을 사서 오래 입고, 물린 옷은 돌려 입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옷도 자동차 같은 내구재(耐久財)처럼 고장 나면 수리하고 중고로도 거래하자는 얘기다. 저쪽이 ‘패스트패션’이라면 이쪽은 ‘슬로패션’쯤 된다.

파타고니아는 옷 입는 습관을 바꾸는 운동을 시작했다. 빨래와 다림질을 많이 하면 옷이 금방 해지고 물과 에너지 소비량도 많아진다. 파타고니아는 세탁하지 않고도 옷을 깨끗하게 입을 수 있는 노하우를 소비자에게 알리고 있다. 볼펜 자국 정도는 빨래를 하지 않아도 변성 알코올이나 레몬주스로 간단히 뺄 수 있다는 식이다. 이 회사는 또 해진 제품을 적당한 가격에 수선해주는 서비스도 확대했다. 지난해에만 1만2000건의 옷을 수선해줬다. 수선 담당 직원도 늘렸다. 입다가 물린 옷을 기부하거나 중고로 사고팔 수 있는 사이트도 열었다.

사람들이 새 옷을 많이 사지 않으면 의류회사는 망하는 게 아닐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파타고니아의 경영진은 매출 감소를 걱정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중고가 아웃도어 브랜드인 파타고니아의 매출이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자 사람들이 의류 소비 횟수를 줄이는 대신 초기 구입비가 비싸더라도 유행을 덜 타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선호하는 성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회사는 이런 흐름을 포착했다. 오래 입고 돌려 입는 옷의 가치를 강조하는 마케팅을 시작했다. 환경에도 도움이 되니 일석이조다. 단순한 절약 운동이 아니다. 시장 확대 전략에 가깝다. 중고 옷이 유통되고 소비자들이 더 오래 옷을 입게 돼 줄어드는 신제품 매출 감소보다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가격 부담 때문에 망설이던 신규 고객을 유인해 시장을 키우는 장점이 더 크다고 본 것이다.

박용 미래전략연구소 경영지식팀 기자
박용 미래전략연구소 경영지식팀 기자
무한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에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다. 소비자의 문제와 욕구를 해결해주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정반대의 가치를 강조하는 패스트패션과 슬로패션이 공존하는 이유다. 패션 시장만 그럴까. 자동차, 전자제품, 가구 등의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이라고 해서 다를 리 없을 것이다. 파타고니아처럼 더 오래 쓰는 전자제품이나 가구, 패스트패션처럼 저렴하고 톡톡 튀는 자동차가 시장에서 통할 수도 있다. 혁신의 답은 소비자가 쥐고 있다.

박용 미래전략연구소 경영지식팀 기자 parky@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94호(2011년 12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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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시련 대응법

▼ Revisiting Machiavelli


1512년은 마키아벨리에게 비극의 한 해였다. 한때 피렌체를 대표하는 외교관으로 명성을 날렸지만 졸지에 비극의 끝자락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반(反)메디치 암살 시도에 개입했다는 소문 탓에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근무하던 피렌체 시뇨리아 정청(政廳)에서 10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바르젤로 감옥에서 무자비한 고문을 당해야 했다. 공직 파면과 반역 혐의로 인한 체포, 바르젤로 감옥에서 당한 고문은 그의 삶을 파국으로 이끌었다. 시련이 극에 달했을 때 우리는 보통 실의에 빠지거나 남 탓하기에 바쁘다. ‘음모술수의 교과서’로 불리는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그에게 닥친 고난과 학대에 어떤 태도로 맞섰을까? 두 눈에 분노의 핏발을 세우고 고문기술자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저주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는 고통마저도 조롱하며 웃음으로 받아쳤다.

소통하면 기업 체질 바뀐다

▼ Harvard Business Review


글로벌 제약회사 셰링-푸라우(현재 머크에 합병)의 최고경영자(CEO)는 러시아 사업부의 일선 영업 관리자들과 대화하던 중 한 가지 사실을 파악했다. 일선 관리자들은 영업하는 데 가장 큰 불만 사항으로 신입사원에게 차량을 배정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런 불만은 표면적으로는 사소한 배차문제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셰링-푸라우의 CEO는 이 사안이 심각한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단지 회사의 영업용 차량을 즉시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뛰어난 영업사원 몇몇이 경쟁업체로 이직을 했기 때문이다. CEO가 일선 관리자와 소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많은 CEO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일선 관리자와 효과적인 소통 하나만으로도 기업의 체질을 바꿀 수 있다는 필자의 주장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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