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건설 황금기? 속으로 멍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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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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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업체 ‘덤핑 수주’ 경쟁… 결산땐 공사비도 못건져

올 상반기 발주된 사우디아라비아의 A발전소 공사 입찰에는 5개의 국내 대형 건설사가 참여해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최종 낙찰자로 선정된 B건설사가 내건 킬로와트(kW)당 EPC(설계·조달·시공) 가격은 2위 업체 가격보다 18.3%나 낮은 565달러였다. 한 업계 고위 관계자는 “업계가 추산한 적정 가격은 kW당 700달러인 만큼 B사는 프로젝트를 따내고도 적자를 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올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패키지로 나눠 발주된 대형 프로젝트를 싹쓸이하다시피 한 국내 두 업체 역시 2위에 비해 최대 17%가량 싼 금액을 써내 수주에 성공했다. 당장은 실적이 올라 홍보하기 좋겠지만 공사비를 결산하게 되는 몇 년 후에는 ‘후폭풍’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국내 해외건설 역사상 최고의 수주 실적을 거둔 한국 건설업체들이 올해도 해외 공사 입찰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경쟁이 과열돼 실제 공사비가 수주 금액보다 많아지는 ‘덤핑 수주’(지나치게 낮은 금액으로 공사를 따내는 것)가 빈발하면서 잠재적 경영 부실, 협력업체에 대한 부담 전가 등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다.

○ 해외 건설 ‘다 걸기’ 그 속사정?

중동의 한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는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한 대형 플랜트 시설 발주처로부터 ‘은밀한 제의’를 받았다. “한국 업체인 C사가 입찰가로 얼마를 쓸 예정인데, 이보다 적게만 쓰면 무조건 공사를 따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국내 업체 간 경쟁으로 공사비를 줄이는 데 재미를 붙인 발주처가 의도적으로 한국 업체들의 과당경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전했다.

해외 건설사들도 한국 업체들의 수주 행태가 시장의 질서를 무너뜨린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이 ‘정상가’보다 20∼30% 낮은 가격으로 덤핑 수주에 뛰어들자 일부 유럽, 일본 업체들이 앞으로 한국 업체가 참여하는 프로젝트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설 정도”라고 전했다.

업체들이 덤핑 수주에 나서는 이유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매출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건설업체의 수주 실적은 총 48조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2% 감소했다. 2008년 이후 건설업체의 국내 수주액은 매년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건설업계 특성상 신규 수주를 통해 인력과 시설, 장비를 가동하지 않으면 고정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저가로라도 수주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국내 건설사 대표의 평균 임기가 짧고 수주 실적이 경영 능력 평가의 가장 큰 잣대로 인정되다 보니 수주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2000년 이후 국내 30대 건설사 대표의 평균 근무 연한은 2.6년으로 총 111명 가운데 26명은 1년 이내에 교체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복남 건산연 연구위원은 “선진국 건설사 전문경영인의 평균 재직 기간은 7년 안팎이며 수주보다는 실제 이익률을 실적 평가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며 “내수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어 덤핑 공사에 따른 경영 부실을 만회할 이익충당금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지난해 10대 대형 건설사의 전체 매출액은 63조4200억여 원으로 2009년에 비해 6%가량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조3400억여 원으로 전년(2조8340억여 원)보다 17%나 줄었다.

○ 과당 경쟁으로 문제점 속출

국내 업체의 과당 경쟁이 해외 업체들보다 빈번한 이유는 해외 공사 물량이 중동지역에 집중된 것도 한 원인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2010년 국내 업체의 해외 수주 물량 중 중동지역 비중은 지난해 66%에서 올 상반기 70%로 높아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사의 질적 평가를 중시하는 미국, 유럽과 달리 중동지역 공사는 가격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덤핑을 피할 수 없다”고 전했다. 프로젝트 관리, 설계, 주요 기자재 조달 등 고부가가치 프로젝트를 주로 겨냥하는 선진국 업체들과 달리 국내 업체들은 시공 위주의 EPC 사업에만 매달려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있다.

해외에서 무리하게 따낸 저가 수주의 부담을 협력업체에 전가하는 것도 문제다. 해외에서 덤핑 수주로 공사를 따낸 D사는 협력업체에 부족한 공사비를 더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건설회사들의 덤핑 수주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외 시장 확대에만 매달리고 있는 국토해양부가 덤핑 행위에 대한 관리 감독에 소홀한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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