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내 호칭 파괴 바람 거센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26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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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대체 대리, 과장, 부장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이죠?"

2008년, 독일계 화약·제약회사인 한국 머크사의 회의실. 새로 온 쾨니히 사장은 의아한 광경을 봤다. 참석자들이 서로를 대리, 과장, 부장이라 부르며 회의를 하는데 과연 어떤 업무를 맡고 있는지 알기가 힘들었다. 쾨니히 사장은 고민 끝에 지난해 '호칭 파괴'를 선언했다. 대신 팀 리더, 프로덕트(제품) 매니저처럼 맡고 있는 업무가 잘 드러나는 호칭을 쓰기로 했다. 그로부터 1년. 머크 관계자는 "아이디어를 내거나 회의를 할 때 직위의 높고 낮음에 연연하지 않게 돼 의사소통이 유연해졌다"고 말했다.

#2. "부장님을 부장님이라 부르지 못하고…. 원래대로 바꾸면 안 될까요?"

2002년 호칭 파괴를 단행해 직위에 관계없이 '님'자를 붙여 부르도록 했던 오리온 그룹은 지난해부터 과장, 부장을 다시 쓰고 있다. 회의 때마다 어색해 말수가 줄어들었고, 거래처에서도 서로 '님'이라고 부르는 모습을 이상하게 쳐다봤기 때문. 결국 "한국적 기업문화와는 맞지 않는다"며 옛날 방식으로 돌아갔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직원들 사이에서 불편하다는 말이 많았다"며 "우리 조직에 맞는 새로운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포스코가 다음달 1일부터 사원-대리-과장-팀장으로 서열화된 명칭을 직무에 따라 매니저, 시니어매니저, 디렉터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수직적 업무체계를 수평적 구조로 바꾸겠다는 의도다. 기업 내 호칭 파괴 바람은 포스코 외에도 거세다. 롯데는 올해 3월 40년 넘게 유지해왔던 부장, 차장, 갑·을 과장, 대리, 사원으로 구분된 호칭을 수석과 책임, 실무자로 간소화했다. 아모레퍼시픽과 해태음료도 틀에 박힌 호칭을 없앴다.

물론 호칭 파괴가 곧바로 수평적인 조직문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한국 머크는 호칭 파괴를 위해 5개월간 25명의 직원들이 팀을 꾸려 준비했다. 호칭을 바꿨다가 실패한 국내외 사례도 꼼꼼히 공부했다. 전 직원이 7개 팀으로 나뉘어 아이디어를 냈다. 호칭을 빼고 부르는 연습도 했다. 고민 끝에 △회사 밖에서 의아한 시선을 보내더라도 반드시 이름 뒤에 '님'자만 붙일 것 △회사에서 부장, 과장 등의 호칭을 부르면 벌금 1000원 등의 규칙도 정했다. 최고경영자(CEO)가 나서 유연한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하기도 했다.

박원우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단순히 호칭만 바꿔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리더의 지속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하고 다양한 혁신적인 변화들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 선희 기자sun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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