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의 대명사이지만 ‘계약직’으로 장기근속이 드물기로 유명한 애널리스트 업계에 최초로 ‘정년퇴직자’가 나온다. 주인공은 최용구 대우증권 신용분석담당 부장으로, 그는 입사 28년 만인 올 7월 말에 만 55세의 나이로 정년퇴직한다. 정규직 사원이 40대 명예퇴직 대상이 되면서 ‘사오정’이라는 용어까지 나오는 풍토에서 계약직 애널리스트가 정년을 채워 퇴직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최 부장은 1일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50대 현역 애널리스트가 많이 활동한다”며 “나를 시작으로 한국에서도 이런 풍토가 정착됐으면 좋겠다”며 정년퇴직을 앞둔 소감을 밝혔다. 이직이 잦은 증권업계에서 최 부장이 28년간 한 회사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신념에 따른 선택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최고의 몸값만 추구했다면 나도 다른 증권사의 리서치센터장으로 옮겼을 것”이라며 “깊이 있는 애널리스트가 되려면 적어도 30년은 현장에서 뛰면서 경기의 큰 사이클이 바뀌는 것을 세 번 정도는 지켜봐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의 대우증권 입사 동기 중에는 신성호 우리투자증권 전무처럼 증권사 임원으로 활약하는 증권맨이 많다. 최 부장은 “후배들이 신 전무처럼 여러 증권사의 센터장을 거쳐 임원까지 하는 것을 역할모델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대학에서 젊고 유능한 교수는 학장을 맡고 노교수는 퇴임 때까지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처럼 애널리스트도 현업을 지키는 것 또한 걸어갈 만한 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최 부장은 1983년 7월 대우증권에 입사해 조사부(현재의 리서치센터)에서 일하다 1984년 대우경제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대우증권은 조사부를 떼어내 연구소를 만들었다. 하지만 대우경제연구소 조사부는 1997년 대우그룹 해체 위기 때 다시 대우증권으로 편입됐다. 이 기간에 최 부장은 음식료와 가전담당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당시 미국에서 만든 ‘코리아펀드’를 외국인투자가들에게 팔기 위해 국내에서는 낯설던 ‘향후 3년간 기업 예상실적’ 보고서 등을 만들었다. 최 부장은 “선진국 수준에 맞춰 정밀한 영문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니 힘든 훈련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대우증권으로 다시 돌아와 조사부장과 방송담당 애널리스트 생활을 병행했고 5년 전부터는 신용분석을 맡고 있다.
최 부장은 “연봉은 다른 증권사 부장급 정도로 받는다”며 “오랜 시간 현장을 지키는 대신 나이가 들수록 한창 젊었을 때보다 일의 효율이 떨어져 연봉을 조금씩 깎는 ‘피크아웃제’를 자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교육 및 애널리스트 양성을 위한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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