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 최초로 정년 퇴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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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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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우증권 최용구 부장 입사 28년만에… 후배들에 귀감

국내 증권업계 애널리스트로는 처음으로 7월에 정년퇴직하는 최용구 대우증권 신용분석담당 부장. 대우증권 제공
국내 증권업계 애널리스트로는 처음으로 7월에 정년퇴직하는 최용구 대우증권 신용분석담당 부장. 대우증권 제공
‘억대 연봉’의 대명사이지만 ‘계약직’으로 장기근속이 드물기로 유명한 애널리스트 업계에 최초로 ‘정년퇴직자’가 나온다. 주인공은 최용구 대우증권 신용분석담당 부장으로, 그는 입사 28년 만인 올 7월 말에 만 55세의 나이로 정년퇴직한다. 정규직 사원이 40대 명예퇴직 대상이 되면서 ‘사오정’이라는 용어까지 나오는 풍토에서 계약직 애널리스트가 정년을 채워 퇴직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최 부장은 1일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50대 현역 애널리스트가 많이 활동한다”며 “나를 시작으로 한국에서도 이런 풍토가 정착됐으면 좋겠다”며 정년퇴직을 앞둔 소감을 밝혔다. 이직이 잦은 증권업계에서 최 부장이 28년간 한 회사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신념에 따른 선택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최고의 몸값만 추구했다면 나도 다른 증권사의 리서치센터장으로 옮겼을 것”이라며 “깊이 있는 애널리스트가 되려면 적어도 30년은 현장에서 뛰면서 경기의 큰 사이클이 바뀌는 것을 세 번 정도는 지켜봐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의 대우증권 입사 동기 중에는 신성호 우리투자증권 전무처럼 증권사 임원으로 활약하는 증권맨이 많다. 최 부장은 “후배들이 신 전무처럼 여러 증권사의 센터장을 거쳐 임원까지 하는 것을 역할모델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대학에서 젊고 유능한 교수는 학장을 맡고 노교수는 퇴임 때까지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처럼 애널리스트도 현업을 지키는 것 또한 걸어갈 만한 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최 부장은 1983년 7월 대우증권에 입사해 조사부(현재의 리서치센터)에서 일하다 1984년 대우경제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대우증권은 조사부를 떼어내 연구소를 만들었다. 하지만 대우경제연구소 조사부는 1997년 대우그룹 해체 위기 때 다시 대우증권으로 편입됐다. 이 기간에 최 부장은 음식료와 가전담당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당시 미국에서 만든 ‘코리아펀드’를 외국인투자가들에게 팔기 위해 국내에서는 낯설던 ‘향후 3년간 기업 예상실적’ 보고서 등을 만들었다. 최 부장은 “선진국 수준에 맞춰 정밀한 영문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니 힘든 훈련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대우증권으로 다시 돌아와 조사부장과 방송담당 애널리스트 생활을 병행했고 5년 전부터는 신용분석을 맡고 있다.

최 부장은 “연봉은 다른 증권사 부장급 정도로 받는다”며 “오랜 시간 현장을 지키는 대신 나이가 들수록 한창 젊었을 때보다 일의 효율이 떨어져 연봉을 조금씩 깎는 ‘피크아웃제’를 자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교육 및 애널리스트 양성을 위한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이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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