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한국서 해선 안될 직업”… 한 SW사장의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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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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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운 산업부 기자
김상운 산업부 기자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업체 사장은 해선 안 될 직업입니다.”

정보기술(IT) 업체 이모 사장은 국내 소프트웨어 생태계의 열악한 현실을 다룬 14일자 동아일보 보도를 접하고 기자에게 보낸 e메일에 이렇게 적었다. 편지에는 그가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보낸 지난 20여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본보 14일자 A1·4면 참조
A1면 [단독]SW 업계 中企 단명… 10곳 중 7곳 10년 못버텨
A4면 ‘강자 독식’에 울고 싶은 SW개발 중소기업


1986년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1992년 소프트웨어 업체를 창업했다는 이 사장은 “동아일보 기사를 보며 평소 제가 업계에서 겪었던 수많은 사례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며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를 (대기업으로부터) 수주하면 그때부터는 노예와 똑같았다”고 말했다. 예컨대 계약서에 납기지연에 대한 불이익이 규정돼 개발자들이 거의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해야 했고, 심지어 발주사의 착오로 납품이 지연돼도 자신들이 책임을 모두 뒤집어썼다는 것. 그는 “개발자들의 높은 이직률과 대기업의 단가 인하에 너무 시달린 나머지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업체 사장은 해선 안 될 직업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한때 80명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확보하는 등 업계에서 제법 탄탄한 입지를 굳혔던 그는 결국 운영난에 부닥쳤다. 이 사장은 결국 소프트웨어 인력들을 모두 정리하고 최근 하드웨어 사업으로 업종을 바꿨다. 그는 “이곳(하드웨어)에서도 비슷한 횡포를 겪고 있지만 소프트웨어를 할 때보다는 낫다”며 “앞으로도 심층 취재로 소프트웨어 중소기업들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이 사장의 e메일로 잠시 울적했던 기자는 같은 날 정부의 ‘대학 IT 교육 개선방안’ 해프닝을 보며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지식경제부가 소프트웨어 인력 양성정책을 발표하면서 교육과학기술부와 충분히 상의하지 않고 ‘수능에 IT 과목을 포함하고 초중고교 컴퓨터교육을 의무화하겠다’는 설익은 정책을 발표해 교과부가 반박 보도자료를 내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소프트웨어와 시스템반도체를 10대 신성장동력 과제로 정해 직접 챙기고 있는 청와대의 뜻에 맞춰 지경부가 비현실적인 백화점식 정책들을 늘어놓은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부디 정부는 겉만 번지르르한 생색내기 정책 발표에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진정 소프트웨어 중소기업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 개발에 나서주길 바란다.

김상운 산업부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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