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잘나간다고 쓰지 마세요” 車부품업체의 슬픈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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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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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경제부 기자
박선희 경제부 기자
최근 증권가에서 주목받고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공장을 취재하던 중 기자는 업체 관계자들이 보인 의외의 반응을 접하고 적잖이 당황했다. 부품업체 관계자들이 대부분 취재 요청에 난색을 표하면서 “전망이 좋다거나 유망한 기업이라고 쓰지 말아 달라”고 사정했기 때문이다.

기자가 접촉했던 차 부품업체들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기술력을 갖춘 유망한 업체로 추천하고, 운용사 펀드매니저들이 수시로 탐방하는 회사들이다. 이들이 회사의 실적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취재 결과, 이른바 ‘슈퍼 갑’인 자동차업체가 쥐락펴락하는 납품단가 인하 문제가 걸려 있음을 알게 됐다. 매년 3, 4월은 부품업체의 납품 단가가 책정되는 시기다. 이때 매출이나 성장성 등이 부각되면 원청업체로부터 ‘CR(Cost Reduction·단가 인하)’ 요청을 받게 된다는 것이 부품업체들의 설명이었다. “지금은 그야말로 ‘요주의 기간’으로 적어도 2분기까지는 납작 엎드려 있어야 합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잘나간다고 언론에서 부각되면 단가 인하 표적이 되기 십상”이라며 “언론사에서 취재를 나오면 회사 인지도가 높아지겠지만 회사 실적에 마이너스가 된다”고 했다. 다른 업체에서는 “견제가 워낙 심하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최근 국내 부품업체들은 가격 경쟁력과 더불어 높은 품질을 인정받으면서 글로벌 자동차업체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각 부품업체는 특정 업체 납품 의존도를 낮추고, 거래처를 다변화하기 위해 해외 업체와 활발히 접촉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납품처 다변화 노력이 언론에 보도될 경우 원청업체의 ‘괘씸죄’에 걸려들 수 있다며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동차업체가 원가 절감을 위해 납품단가 인하에 노력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협력업체에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문제다. 실적 공시를 이미 끝낸 마당에 협력업체들이 굳이 원청업체의 눈치를 살피려 하는 것은 그만큼 원가절감 압력이 크다는 뜻이 아닐까. 부품 산업을 키우는 일은 경제의 기초를 다진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전문가들은 완제품보다 부품에서 더 높은 수익성을 창출하는 시기가 올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제대로 된 부품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전제돼야 한다. 단가 인하 압력은 지난 10년간 자동차부품주의 주된 디스카운트 요인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고 느꼈는데, 현장에서 접한 납품업체의 표정을 보니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선희 경제부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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