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지진 계기 선택기준 변화…“아파트, 탱크처럼 튼튼하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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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사는 50대 주부 이현옥 씨는 최근 해운대구의 아파트를 물색하다가 고민에 빠졌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무너지는 장면이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 그는 “주식만 휴지조각이 되는 줄 알았는데 실물자산도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해졌다”며 “아파트를 고를 때 내진설계가 잘돼 있는지를 먼저 따지게 됐다”고 말했다.

동일본 대지진이 주거 선호도를 바꾸고 있다. 전망과 인테리어 등 화려함과 안락함보다 튼튼함이 아파트 선택의 우선순위로 떠오르고 있다.

○ 우리 집은 내진설계 됐나


다음 달 1일 한라건설을 시작으로 차례로 공급하려 했던 김포한강신도시 5개 건설업체(한라건설, 대우건설, 김포도시공사, 모아주택산업&모아건설, 반도건설)는 15일 한꺼번에 물량을 쏟아내는 동시분양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회사 관계자는 “수요자들이 동일본 대지진에만 관심이 쏠려 있어 한꺼번에 쏟아내 눈길을 끌기로 결정했다”며 “홍보 전략도 내진설계가 잘된 튼튼한 아파트라는 점을 앞세우는 식으로 초점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 송도의 한 분양관계자는 “예전에는 바다 전망에 관심을 갖는 수요자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아파트가 내진설계 몇 등급이냐’ ‘시공능력은 우수하냐’ 등의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내진설계 기준이 도입되기 전에 지어진 노후 아파트의 인기는 떨어지고 있다. 특히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는 1기 신도시 주민들은 불안감에 떨고 있다. 차정윤 한국리모델링협회 사무국장은 “안전성을 위해서라도 리모델링 논의가 활성화돼야 한다”며 “낡은 아파트를 그대로 두기보다 내진구조를 보강한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 진화하는 내진설계


수요자들의 선택기준이 바뀌면서 건설사들도 내진설계를 강화하는 추세다.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건설사들의 내진설계 및 시공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2005년 이후 신축된 6층 이상 아파트는 보통 리히터 규모 5.5∼6.5의 지진을 견딜 수 있다.

내진설계 방법은 크게 내진(耐震), 제진(制震), 면진(免震)으로 구분된다. 기존의 내진설계는 철근 콘크리트로 건물을 단단하게 지어 지진을 버티는 방법이다. 제진설계는 벽체 사이에 지진제어장치(제진댐퍼)를 넣어 지진 에너지를 흡수하는 방식이다. 지진이 나더라도 제진장치를 교체하고 주변의 균열만 보수하면 된다.

면진구조는 한 단계 더 나아가 건물과 지면 또는 건물 층 사이에 면진 고무장치를 설치해 지반과 건물을 아예 분리한다. 지진이 발생했더라도 바로 건물을 재사용할 수 있고 흔들림도 10∼25%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제진, 면진설계가 확산되고 있다. 쌍용건설은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평화아파트 리모델링 공사 등에서 신축 벽채 구조물 속에 댐퍼를 매립하는 제진 시스템을 적용했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인방보(기둥과 기둥 사이 출입구 상부를 잇는 보)에 댐퍼를 매립해 지진 충격을 흡수하는 공법을 개발해 국토해양부 건설신기술로 지정받았다”며 “경기 남양주시 별내를 시작으로 신축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GS건설, 롯데건설 등도 아파트 건설현장에 제진 시스템을 도입했다.

동일토건은 국내 아파트 최초로 면진 설계를 적용했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동일하이빌 뉴시티는 데크(1∼7층)와 주거동(8∼36층) 사이에 특수 제작된 고무와 강판을 층층이 겹쳐 만든 면진 고무장치 388개를 넣어 규모 9.0의 강진을 견딜 수 있게 했다.

○ 설계·시공은 최고, 운영은 미흡


국내 내진설계 기준도 우수한 편이다. 김민수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사무국장은 “우리나라의 내진기준(KBC-2009)은 미국 일본 유럽 못지않게 지진하중, 풍하중 등에 맞춰 제대로 제정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진설계 전문가의 제도적 참여가 보장돼 있지 않다는 게 문제. 건축법은 내진설계 전문가인 건축구조기술사의 설계 참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가 해당 건물의 개별적 특성과 지진하중을 제대로 적용해 도면을 설계할 수 없는 현실이다.

김 사무국장은 “내진설계 전문가가 건축사의 하청을 받아 공학적인 구조계산만을 하는 상황”이라며 “내진설계가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는지 확인하기 위한 구조감리제도 도입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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