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1조2000억 브리지론’ MOU 박탈된 뒤 공개한 까닭은

  • 동아일보

“입찰평가 때 감점 우려… 투자확약서 제출 안한듯”

현대그룹이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을 통해 마련한 현대건설 인수대금 1조2000억 원의 정체가 ‘브리지론’이라고 밝히면서 현대건설 매각 논란의 또 다른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다. 시장의 관심사는 왜 현대그룹이 처음부터 브리지론이라고 밝히지 않고 현대건설 주주협의회(채권단)를 대상으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다가 우선협상대상자 지위까지 박탈당했는지에 쏠려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그룹이 브리지론이라고 밝히지 않은 것은 이와 관련한 까다로운 입찰조건을 피해가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브리지론이란 본 대출을 일으킬 것을 전제로 일시적인 시간 간격을 메우기 위해 사용되는 임시 단기대출을 뜻한다.

현대그룹은 지난달 15일 입찰제안서를 제출할 때 1조2000억 원에 대해 브리지론 투자확약서(LOC)가 아닌 예금잔액증명서를 냈다. LOC를 제출할 경우 브리지론의 기간과 조건, 투자보장장치 등 상세 증빙서류를 함께 내야 하는 데다 자기자금이 아닌 타인자금으로 분류돼 입찰평가에서 감점을 받게 된다. 현대그룹은 이 같은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자기자금으로 분류되는 잔액증명서를 제출하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 관계자는 “LOC를 내면 브리지론의 설계구조가 다 드러난다”며 “이렇게 되면 채권단이 요구한 ‘보증과 담보, 이와 유사한 계획이 없어야 한다’는 규정을 충족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단이 ‘승자의 저주’를 막기 위해 처음부터 내건 연대보증 책임도 현대그룹이 브리지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하종선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은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계열사인) 넥스젠이 투자에 참여하려다 연대책임 부담 때문에 투자를 보류했고 그 대신 나티시스를 통해 브리지론 형태의 대출을 받았다”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