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009년 26대 그룹 일자리 성적표]<상>해외기업 감원할 때 국내기업은 ‘미래 대비 증원’

  • Array
  • 입력 2010년 11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해외 글로벌기업들이 2008, 2009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대규모 감원을 실시했지만 국내 30대 그룹 대부분은 이 기간에 직원 수를 늘려 한국 경제와 고용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동아일보 산업부가 대학, 경제단체, 경제연구소의 전문가 10명과 함께 26대 대규모기업집단(그룹)의 국내 계열사 종업원 수를 분석한 결과 이들 그룹의 직원 증가율은 2008년 3.4%로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07년 증가율과 같았다. 이들 그룹의 2009년 직원 증가율은 4.0%였으며 2008, 2009년 직원 수가 줄어든 민간 그룹은 CJ 한 곳뿐이었다. 미국의 유력 경제지인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이 지난해 감원한 인원이 76만여 명에 이르는 등 해외 글로벌 기업들이 이 기간 대규모로 직원 수를 줄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 경제위기 기간에도 직원 수 안 줄여

2008, 2009년 2년간 직원 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그룹은 LG그룹으로, 이 기간 모두 1만7600여 명(20.5%)이 늘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세계 경제위기가 본격화되던 2008년 말 “어렵다고 사람을 내보내면 안 되고, 어렵다고 사람을 안 뽑아서도 안 된다”고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당부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다음으로 직원 수가 많이 늘어난 곳은 삼성(1만4500여 명) KT(7700여 명) GS(3600여 명) 등이었다.

이에 대해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제학 전공)는 “사람을 해고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보는 분위기가 있고 위기 이후의 기회에 대해 기업들이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센터 소장은 “가격과 품질 경쟁력에서 기본적으로 한국 기업들의 포지셔닝이 좋았고, 불경기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외환위기 때 학습했던 덕분”으로 분석했다.

이 기간 직원 수를 줄인 그룹은 한국도로공사 한국가스공사 CJ그룹 등 3곳이었으나 이들 그룹의 종업원 수 감소 폭도 각각 100∼200명 수준에 불과했다. 2004∼2009년 26대 그룹의 ‘일자리 성적표’를 살펴본 결과 이 기간 덩치에 비해 직원 수를 가장 많이 늘린 그룹은 STX그룹(89.3%)으로 나타났다. STX그룹은 종업원 수가 5400여 명에서 1만400여 명으로 배 가까이 늘어났다.

○ STX그룹 종업원 수 증가율 가장 높아

STX그룹은 그룹 출범 초기에는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불렸으나 최근 5년간은 주로 해외 기업 인수에 공을 들였고,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의 국내 기업을 인수하지는 않았다. 이 기간 국내 종업원 수 증가는 M&A보다는 실제로 채용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강대선 ㈜STX 상무는 “수차례 M&A를 진행하면서도 인수되는 기업의 인력에 대해 구조조정을 벌이지 않았다”며 “기업을 인수하는 것보다 그 기업의 인재를 인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강덕수 회장의 지론”이라고 강조했다.

STX그룹 다음은 금호아시아나그룹(86.2%) 동부그룹(51.2%) 효성그룹(43.1%) 신세계그룹(42.6%)의 순이었다. 금호그룹은 이 기간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한 것이 고용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지난해 말 기준으로 대우건설의 종업원 수는 6100여 명, 대한통운의 임직원 수는 4200여 명 수준이다. STX, 금호, 동부 등 직원 수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이들 5개 그룹은 자산 기준 10대 그룹은 한 곳도 없고, 30대 그룹 중 비교적 중하위권에 속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증가율이 아닌 실제로 늘어난 수만 놓고 보면 가장 직원이 많이 늘어난 곳은 삼성그룹으로 모두 4만9000여 명이 늘어났다. 삼성전자 한 곳에서만 2만2800여 명이 늘었으며 이는 STX그룹과 금호그룹의 종업원 수 증가 폭을 합친 것(2만600여 명)보다 더 큰 수치다.

○ 순익 1200% 늘어도 직원 수 그대로

반면 한진그룹(―13.3%) 현대그룹(―0.7%) 포스코(7.3%) 현대중공업(9.1%) 대림(10.3%) 현대자동차그룹(11.3%) 등은 민간그룹 중 직원 수 증가율이 낮았다. 포스코 현대중공업 현대차 등 최근 5년간 승승장구한 그룹들의 직원 수 증가율이 연평균 2% 수준에 그쳤던 셈이다.

포스코는 이 기간 신성장동력을 찾겠다며 회사를 새로 세우거나 인수해 계열사가 17개에서 48개로 배 이상 늘었으며 현대중공업은 조선업 호황을 거치면서 순이익이 1200% 이상 증가했다. 현대차그룹은 순익이 150% 이상 늘고 계열사 수도 28개에서 42개가 됐다. 이들 세 그룹은 자산순위 상위권 그룹으로 대형 장치산업이고 생산직 직원 처우가 좋은 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박승록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근본적으로 장치산업들은 생산이나 증가에 고용을 늘리는 게 아니라 가동률을 높여서 대응한다”고 말했다.

한국전력 한국도로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철도공사 등 공기업 4곳은 직원 수가 거의 제자리걸음이었다. 5년간 이들 공기업 직원 수 전체 증가율은 2.1%(7670명)에 불과했으며, 도로공사는 직원이 100여 명 줄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 참여 전문가 (가나다순) 김기승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 교수, 박승록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손동원 인하대 경영학부 교수,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정책팀장, 장석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센터 소장, 한진희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대기업 15만명 늘릴 동안 중소기업 102만명 증가 ▼
일자리 해법은 역시 中企서 찾아야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 동안 26대 그룹의 직원 수는 매년 전년 대비 3.4∼5.6% 안에서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26대 그룹의 매출액 총합은 전년 대비 1.4%에서 24.4%까지 올랐고, 당기순이익의 총합은 최소 29.5% 감소에서 최대 36.8% 증가까지 출렁였지만 직원 수의 총합은 이와 별 관련이 없었다.

경기나 실적, 정권 교체, 경제성장률과도 큰 연관 없이 한국에 있는 거대 그룹의 직원 수 총합은 매년 ‘정해진 범위’에서만 늘어난 셈이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대기업이 경제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중장기 전략 아래 안정적으로 인력을 운용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처럼 대기업 직원 수가 증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일자리 문제의 해법은 중소기업에서 찾아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가 통계청의 전국사업체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5∼2008년 중소기업 종사자는 1044만여 명에서 1146만여 명으로 약 102만 명이 늘어 이 기간 증가한 기업 일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대기업 종사자는 같은 기간 약 15만 명 증가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해야 할 일로 △공급 과잉 위험이 있는 음식·숙박업보다 지식기반 서비스업으로 창업을 유도하고 △신생 기업들의 시장 정착을 돕는 한편 △일정 규모가 된 중소기업을 중견기업으로 키워내는 일을 정부가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올해 7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 제조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이 기업들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가 할 일로 고용보조금과 세제 지원 확대(64.0%)를 가장 많이 꼽았다. 복수 응답으로 물어본 이 항목에서 다음으로 많은 답은 근로환경 및 복지 개선 지원(34.7%), 규제 완화와 투자활성화 지원(27.3%),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개선 노력(23.3%) 등이었다.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 공정위 공개 정보 내려받아 취재팀-전문가 공동 분석

이번 분석은 자산 순위 30대 그룹 중 최근 5년간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한 그룹의 각종 경영 지표를 공정위 대규모기업집단 정보공개시스템을 통해 내려받아 취재팀이 1차 분석한 결과를 10명의 경제전문가가 검토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하이닉스, 현대건설, 부영 등 4곳은 이 기간 한 번 이상 요건이 안 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서 빠진 바 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