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단기외채 과세 방침 왜 나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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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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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돈 일시적 대량유출 막기 선제 대책

2008년 9월 미국의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신호탄이었다. 전 세계 자금은 안전자산을 찾아 신흥국에서 빠져나왔다. 한국에서는 2008년 9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4개월 동안 무려 695억 달러의 외화가 빠져나갔다. 그중 70%(487억 달러)는 만기가 1년 이내인 단기 외채였다.

정부가 단기 외채에 세금을 매기기로 방침을 정한 것은 국제 금융시장이 출렁일 때 한국의 외환시장을 위기로 몰아가는 핵심 요인에 칼을 대겠다는 의미다. 이미 올해 6월 은행의 선물환 거래규모를 제한하는 내용의 ‘자본유출입 변동완화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2차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 금융 당국은 올해 6월부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은행의 비(非)예금부채에 세금을 매기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비예금부채에는 원화 및 외화차입, 은행채, 파생상품, 콜머니 등이 있다. “비예금부채 모두에 과세하면 은행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 있어 최근 단기 외채에 과세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선진국 중심으로 금융위기 이후 은행에 투입한 공적자금을 거둬들이기 위해 은행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지만 한국은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행세는 적합하지 않다”며 “하지만 경제위기 때 외화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단기 외채에 과세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기 외채에 과세를 하면 은행이 해외에서 1년 미만의 외화를 차입할 때 비용이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은행은 단기 외채 비중을 줄일 수밖에 없다. 또 단기로 외화를 빌려 중장기로 대출해주는 과도한 위험을 추구하는 영업방식도 줄어들게 된다.

현재 TF는 단기 외채에 부과할 세율, 대상 금융권 범위 등의 내용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단기 외채에 세금을 부과하면 은행들이 그 부담을 고객에게 떠넘길 수 있다고 보고 관련 대책도 마련 중이다. 올해를 넘기지 않고 대책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TF는 한국이 올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의장국인 만큼 외화 규제책이 국제 기준을 위배하지 않는지 고심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은행의 비예금성 부채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이익과 보너스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제안하면서 정부 대책도 탄력을 받았다.

단기 외채 과세 방침에 대해 국내 은행들은 반발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단기 외채에 과세한다는 것은 은행의 자유로운 외화차입을 막는 것”이라며 “은행의 외화 대출이 위축되면서 국내 경기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브라질이 도입한 금융거래세(일명 토빈세)는 도입하지 않기로 확정했다. 브라질은 외국자본에 대한 금융거래세를 최근 4%에서 6%로 올렸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에 투자하는 모든 금융거래에 대해 세금을 매기면 대한(對韓) 투자가 급격히 위축될 수 있어 외화 대책 카드에서 제외시켰다”고 말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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