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WINE]‘와인감정 황제’ 로버트 파커의 신화와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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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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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서는 로버트 파커가 와인에 매긴 점수를 안내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와인숍이 생기기 시작했다. 닥터비노닷컴(www.drvino.com) 운영자 타일러 콜먼은 자신의 저서 ‘와인 정치학’에서 미국의 일부 와인 수입상이 파커의 평가 기준에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와이너리의 와인만을 수입해 짭짤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고 말한다. 파커가 매긴 점수로 와인을 평가하는 데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반(反)파커 선언을 한 와인’은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런 와인을 ‘고유한 개성이 잘 표현된 와인’으로 받아들일 소비자도 적지 않았으리라 본다. 많은 와이너리가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진한 과일향에 육중한 보디감이 특징인 이른바 ‘파커 스타일’ 와인만을 생산한다는 우려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와인 황제’ 파커에 대한 반발은 책과 영상물로도 표출되고 있다. 2004년 나온 다큐멘터리 ‘몬도비노’에서 파커는 미셸 롤랑과 함께 획일적인 와인 맛을 전파하는 ‘악의 축’으로 그려진다. 2007년 프랑스에서는 ‘로버트 파커: 신화의 해부. 더는 받아들일 수 없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와인 감정가의 실체’란 책이 출판되었다. 파커 곁에서 8년간 번역 업무를 도왔던 여직원이 쓴 이 책은 파커에게 물질적인 대가를 제공하는 와이너리의 와인이 좋은 평가를 받는 등 파커의 평가는 신뢰할 만한 것이 못 된다고 폭로했다. 심지어 파커가 맛을 보지도 않고 점수를 준 와인이 있다는 대목도 있다. 이에 대해 파커는 그녀가 부정 회계 의혹으로 해고된 것에 앙심을 품고 자신을 모함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2008년 미국에서는 ‘와인과 사랑을 위한 전쟁: 파커 스타일 와인 트렌드에서 세상을 구해낸 방법’이란 책이 출간됐다. 이 책의 저자인 와인칼럼니스트는 파커의 싸구려 입맛이 가진 영향력 때문에 전통적으로 제조해 온 순수한 와인의 세계가 파괴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다큐멘터리 ‘몬도비노’의 감독인 조너선 노시터는 몬도비노를 선보인 지 3년 뒤 다시 ‘미각과 권력’이란 책에서 파커를 다시 한 번 걸고 넘어졌다. 그의 비판은 와인 양조가, 와인 저널리스트, 와인 유통업체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는 이들이 암암리에 서로 연결돼 사람들의 입맛을 좌지우지한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파커의 열혈 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올해로 64세를 맞은 그의 혀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며 속히 물러나야 한다고 소리 높이는 쪽도 아니다. 그럼에도 파커에 대해 반발하는 다큐멘터리와 책들을 소개한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와인업계의 현실을 되돌아보자는 말이다. 파커가 오늘날 받고 있는 비난은 따지고 보면 그의 영향력 때문이다. 하지만 파커는 시장을 향해 “나에게 힘을 몰아 달라”고 외친 적이 없다. 와인에 대한 아무런 소신도 없이 “파커는 몇 점을 준 와인인데?”라고 묻는 말들이 결국 파커를 향한 비난의 화살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지….

김혜주 와인칼럼니스트

● 이번 주의 와인

마스 드 도마스 가사크,

뱅 드 페이 드 레로1971년 한 지질학자가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의 외진 땅이 부르고뉴의 가장 좋은 테루아르와 견줄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곳 테루아르는 20년 넘게 버틸 힘을 가진 와인을 세상에 내놓는다. 오랫동안 ‘랑그도크의 샤토 라피트’라고 불린 바로 이 와인이다.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로 사용해 만든다. 몬도비노의 카메라가 이곳의 주인장 에메 기베르와 포도밭 주변 풍광을 충실히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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