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칼럼]선수 식단부터 바꾼 아스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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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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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4대 클럽(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아스널, 리버풀) 중 하나인 아스널의 수장 아르센 벵게는 독특한 인물이다. 알렉스 퍼거슨, 거스 히딩크, 조제 무리뉴 등 스타 선수 못지않은 인기와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감독들이 넘쳐나는 축구계에서, 그는 자신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활동하면서도 아스널의 성공을 이끌었다.

1996년 아스널에 부임한 벵게가 처음 한 일은 선수단 파악이나 전략 수립이 아니었다. 그는 식단에서 적색 육류를 없애고 찐 생선과 삶은 채소 위주로 메뉴를 바꿨다. 맥주도 금지했고 커피의 설탕 분량까지 점검했다. 당시 선수들은 기름이 줄줄 흐르는 베이컨과 소시지, 튀긴 생선, 짠 맥주, 설탕이 가득 든 커피 등을 즐겼기에 벵게의 지시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아스널에 오기 전 일본 J리그에서 감독을 지냈던 벵게는 체계적인 훈련과 식단, 절제된 사생활 등 일본 스타일에 매료됐다. 이런 변화가 성과로 이어지자 선수단 분위기도 달라졌다. 부임 첫해인 1996∼1997시즌에 아스널은 리그 3위를 기록했다. 1997∼1998시즌에는 강력한 라이벌 맨유를 넘어 우승했다. 2001∼2002시즌에는 EPL 역사상 처음으로 방문 경기 무패 우승까지 달성했다.

1990년대 후반 아스널을 이끌었던 토니 애덤스, 리 딕슨, 나이절 윈터번 등 노장들은 벵거가 부임한 뒤 자신들의 신체에 큰 변화가 나타났으며, 덕분에 선수 생활을 연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제 대부분의 EPL 구단들은 지방 및 염분을 제한한 식단을 내놓고 있다.

벵게의 방식이 옳으냐 그르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선수 개개인의 몸에 엄청난 돈이 걸려 있고,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EPL에서도 벵게 이전까지 선수단 건강관리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전무했다는 점이다.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이 큰 영국 축구계가 낯선 프랑스인의 변혁을 받아들인 이유도 벵게가 건강관리 관행을 바꾼 최초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벵게의 개혁은 축구계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좋은 교훈을 준다. 직원들의 건강이 기업 경쟁력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핵심 인재를 뽑는 일도 중요하지만 핵심 인재가 질병이나 스트레스에 시달려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면 기업은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건강보험 비용을 줄이려는 의도도 있지만 미국 기업은 일찍부터 직원 건강관리에 열심이다. 구글은 사내 음식점에서 건강에 유익한 정도에 따라 음식을 녹색, 노란색, 빨간색으로 분류해 판다. 유기농 식품 업체 홀푸드마켓은 비흡연자나 적정 수치의 혈압을 가진 직원이 매장에서 물건을 사면 할인 혜택을 준다. 인텔, 파파존스 피자 등도 직원이 살을 빼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면 인센티브를 주고, 다양한 운동관리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미국 경제조사기관 콘퍼런스보드는 미국 기업들이 2008년 직원 비만 때문에만 연간 450억 달러를 지불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건강보험개혁법안의 통과로 앞으로 기업이 부담할 건강보험 비용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성인병이 날로 증가하는 한국의 현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직원 건강관리는 직원과 기업의 공동 책임이자 의무다.

하정민 미래전략연구소 경영지식팀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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