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CASE STUDY]한샘의 재도약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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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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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채널 혁명 - 고객감동 포인트제 - ‘단골의 힘’으로 5000억 벽을 넘다

한샘 이노는 제품 디자인부터 생산 공정, 고객 상담,시공에 이르는 비즈니스 프로세스 전체를 혁신해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사진 제공 한샘
한샘 이노는 제품 디자인부터 생산 공정, 고객 상담,시공에 이르는 비즈니스 프로세스 전체를 혁신해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사진 제공 한샘

지난해 말 국내 부엌 및 인테리어 가구 선두 회사인 한샘에 비상이 걸렸다. 매출 1조 원 시대를 여는 핵심 성장동력 중 하나인 중저가 부엌가구 브랜드 ‘인테리어 키친(IK)’의 성장세가 하반기 들어 눈에 띄게 둔화됐기 때문이다. IK 사업은 2009년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과 내수 침체 속에서도 전년 대비 308.3% 증가한 391억 원으로 급성장했던 효자 사업이다.

한샘 내부에서는 과거의 악몽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한샘은 2002년 4700억 원의 매출을 올린 후 2008년까지 매출액 5000억 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주력사업을 건설사 특판 영업에서 중저가 부엌가구와 인테리어 가구 중심의 소비자 판매 사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2005년에는 매출이 3000억 원대로 떨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2009년 매출액 5000억 원 시대를 연 일등 공신이 IK 사업, 온라인, 인테리어 가구 직매장 사업이었다. 그런데 연간 10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려줄 것으로 기대했던 IK 사업이 ‘조로(早老) 증세’를 보인 것이다.

한샘은 즉각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해법 찾기에 나섰다. 한샘의 부엌유통산업본부 총책임자였던 노지영 상무가 본부장 자리를 내놓고 백의종군하는 심정으로 직접 TF를 맡았다. 매출이 큰 폭으로 뒷걸음질 쳤던 과거의 악몽을 되풀이할 수 없었다. 이는 또 연매출 1조 원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승부수이기도 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64호(2010년 9월 1일자)는 제조 중심의 기존 사업 모델의 한계에 도전한 한샘의 서비스 혁신 사례를 심층 분석했다.

○유통 채널 개편으로 중저가 시장 공략

국내 부엌가구 시장에서 대기업 브랜드의 점유율은 15∼2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중소 사업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비(非)브랜드 시장이다. 한샘이 매출액 5000억 원의 벽을 극복하려면 전체 시장의 약 80%에 해당하는 이 중저가 시장의 점유율 확대가 필수적이었다. 한샘은 2000년대 들어 ‘밀란’ ‘인텔’ 등 중저가 부엌가구 브랜드를 선보였다. 하지만 기존 대리점 체제를 고수하는 바람에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다.

한샘은 2008년 본격적인 중저가 시장 공략을 위해 핵심 역량인 대리점 중심 유통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손보는 ‘필승 카드’를 꺼냈다. 본사가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인테리어 전문점을 상대로 직접 영업하는 ‘IK 사업’이었다. 이 결과 유통 채널이 ‘본사-대리점-인테리어 전문점’에서 ‘본사-인테리어 전문점’으로 단순해졌다. 저가 제품과의 가격 격차도 10%대로 줄었다.

○토털 혁신을 통한 또 한 번의 승부수

한샘은 지난해 하반기 IK 사업이 정체를 보이자 새로운 혁신을 시도했다. IK 사업 성장 정체의 원인이 본사의 고객 상담 프로세스 내 ‘병목 현상’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가 제품을 판매하던 방식으로 인테리어 전문점을 상대하다 보니 영업 사원의 업무 부담이 급증했고, 매출 성장세도 둔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난 것.

한샘 TF는 국내 아파트 거주자의 80%가 20∼30평형대에 살고 있으며 중소형 아파트의 부엌 구조는 대부분 ‘ㄱ자’나 ‘ㄷ자’형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고객의 부엌 치수를 입력하고 적합한 부엌가구 세트를 컴퓨터에서 고를 수 있게 만든다면 영업 사원의 고객 상담 프로세스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한샘은 30년 부엌가구 제조 경험을 통해 국내 아파트 부엌에 맞는 4800가지 부엌가구 세트 모듈을 개발했다. 생산 공정도 이 모듈에 맞게 단순화했다.

한샘은 이를 토대로 올해 7월 ‘한샘 이노(INNO)’ 브랜드를 선보였다. 고객이 컴퓨터 화면에서 7, 8번 클릭하면 원하는 부엌가구 세트를 골라 곧바로 견적 상담까지 할 수 있게 됐다. 시공에 품이 많이 들어가는 군더더기 제품 디자인도 없앴다. 이 결과 상담부터 시공까지 사나흘이면 끝났다. 시공 시간도 8시간에서 6시간 정도로 줄었다. 정오에 작업을 시작해도 오후 6시면 작업이 끝났다. 고객의 저녁 시간을 방해하지 않게 됐다.

장우순 부엌유통사업본부 차장은 “부엌가구 모듈화를 통해 고객 상담 프로세스는 6단계에서 3단계로 줄었고, 공기가 기존의 절반 미만으로 단축됐다”며 “생산비용과 시간도 20% 정도 감축됐다”고 말했다.

○‘만들면 그뿐’ 마인드를 바꿔라

한샘의 올해 경영화두는 ‘고객 감동 차별화’다. 중기 목표로 ‘단골 고객 50%’라는 수치까지 제시했다. 이는 과거 제조업 모델에서 서비스 모델로 전환하기 위한 과제다. 가치 창출의 원천이 제품에서 시스템으로, 이제는 ‘고객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만들고 팔면 그뿐’이라는 직원들의 제조업 마인드를 버리는 게 가장 급선무였다. 특히 영업, 시공, 애프터서비스(AS) 사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한샘은 2003년 AS 사원을 대상으로 고객 만족도 평가 결과와 고객 피드백 내용을 개인별 포인트로 환산해 관리하는 고객감동 포인트 제도를 도입했다. 이어 이 제도를 영업, 직매장, 대리점, 시공 직원으로 확대했다.

‘고객 감동’ 경영을 제도화하자 직원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 AS 직원은 “AS를 마치면 고객이 음료를 내주는데, 오히려 폐를 끼친 우리가 음료를 대접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커피를 사들고 고객을 방문했다.

최양하 한샘 회장은 “우수 사례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인센티브를 줬더니 아는 사람들을 동원해 평가를 조작하던 제도 도입 초기의 부작용이 사라졌다”며 “한 달 평균 70∼80명의 고객이 고객 서비스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김밥, 장난감 등과 같은 선물을 사서 본사로 찾아온다”고 말했다. 최 회장도 직원들 덕분에 그림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한샘의 힘은 입소문 마케팅… 2020년 유통서비스 회사로

한샘의 노력은 단순히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직원들의 태도 변화가 고객 만족을 불러오고 다시 성과로 이어지도록 철저히 관리했다. 이를 위해 2007년 고객 데이터를 심층 분석하고 단골 마케팅을 강화했다. 고객의 구매 패턴을 분석한 결과 구매 후 90일 이내에 본인 또는 다른 고객 추천을 통한 재구매가 일어나는 비율이 50∼6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내구성 소비재인 가구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재구매가 일어날 것’이라는 과거의 막연한 추측과는 다른 결과였다.

김원철 CS기획팀 차장은 “단골 고객을 대상으로 재구매를 높이는 방안으로 ‘연고소개 매출’ 개념을 도입했다”며 “서비스에 만족한 고객은 신속하게 재구매를 일으킨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말했다. 이는 컨설팅회사 베인앤드컴퍼니가 제안한 순고객추천지수(NPS) 개념에 착안해 입소문을 통한 매출을 지표화한 것이다. 이어 연고소개 매출 결과를 영업사원 등의 인센티브와 업무평가에 반영했다.

지표 도입 이후 직원들의 인식과 태도에 변화가 나타났다. 입사 한 달 반 만에 연고 매출을 올리는 직원도 등장했다. ‘우리 딸처럼 잘해줘 고마웠다’는 게 이유였다. 직원들은 고객에게 긍정적인 첫인상을 주려는 노력은 물론이고 고객과의 지속적인 관계도 중시하게 됐다.

김 차장은 “고객의 연고소개 매출이 사내 정보시스템에 등록되면 담당 영업사원에게 문자메시지가 곧바로 전송된다”며 “이 영업사원이 해당 고객에게 곧바로 감사 인사를 하도록 고객관리를 시스템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결과 한샘의 연고소개 매출은 2008년 소비자판매 매출액의 10%로 증가했다. 2010년 7월 현재 연고매출은 전체 소비자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한샘은 3년 내에 이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 밖에 업계 최고의 물류 경쟁력, 가치사슬 전반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ERP) 등의 정보기술(IT) 인프라, 탄탄한 재무구조도 한샘의 강점이다.

이준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한샘은 사업모델의 혁신 과정에서 제품 차별화를 통해 기존 대리점 유통 채널과의 갈등을 현명하게 극복했고, 새로운 인재 육성과 평가 시스템 도입을 통해 조직문화와 프로세스를 성공적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한샘은 이 같은 핵심역량과 IK 사업, 급성장하는 온라인 사업, 인테리어 직매장 사업의 3대 성장동력을 통해 연매출 1조 원 시대에 도전하고 있다.

최 회장은 “당분간 생산라인에 투자할 계획은 없다”며 “2020년 한샘은 생산직보다 유통 서비스 담당 직원이 더 많은 인테리어 가구 및 건자재 유통회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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