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체, 전국 훑으며 추석 과일물량 확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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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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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배 흉작… 농민들 “태풍 맞아 아예 보상 받았으면”
전주배는 냉해 적어… 일부 “50일 전 선급금” 제시도

전남 나주시 왕곡면 배 과수원에서 이병수 씨가 배를 점검하고 있다. 나주지역 배 농사가 한파 및 병충해로 큰 피해를 봤지만 이 
씨는 효소농법 효과 덕분에 예년 수준의 수확을 예상하고 있다. 나주=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전남 나주시 왕곡면 배 과수원에서 이병수 씨가 배를 점검하고 있다. 나주지역 배 농사가 한파 및 병충해로 큰 피해를 봤지만 이 씨는 효소농법 효과 덕분에 예년 수준의 수확을 예상하고 있다. 나주=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배 농사 30년 만에 올해가 최악이여. 4월 한파 때문에 착과가 제대로 안된 데다 흑성병이 유행해 시방 제대로 된 배가 없어. 상급 깨끗한 배 수확은 작년 10분의 1이나 될까 싶어.”

지난달 28일 오후 전남 나주시 왕곡면 덕산리 배 과수원. 1만6500m²(약 5000 평) 배 농사를 짓는 최삼영 씨(70)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최 씨가 보여준 배는 곳곳에 검정 얼룩이 져 있었다. 2003년 배 품귀현상을 불러왔던 검은별무늿병(흑성병)이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올봄 이상 한파로 수세(樹勢)가 약해진 상태에서 비까지 자주 오는 바람에 농가가 약제 살포시기를 놓친 것이 원인이다.

○ 배, 추석 앞두고 유통업계 ‘비상’

추석이 50여 일 남았지만 유통업계는 벌써 비상이 걸렸다. 추석 선물용 과일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추석 과일인 배가 올봄 냉해 피해 및 7월 마른장마, 흑성병 유행 등으로 생산량이 15∼20%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선물용으로 쓰이는 최상급 과일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올해 배 가격이 지난해 대비 15% 이상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만약 8월 태풍 피해가 클 경우 올 추석 배 장사는 아예 끝난다는 위기감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배 주산지인 전남 나주시가 올해 심각한 흉년을 맞았다. 태풍보험에 든 상당수 농가는 아예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8월에 태풍이 오기를 바라고 있을 정도다. 현재 상당수 배가 크기 및 품질 미달로 정상적인 판매가 불가능한 상태다. 만약 태풍을 맞아 낙과가 많을 경우 정상가로 보상받을 수 있다.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린 유통업체는 기존 거래 농가뿐 아니라 하우스 배, 신품종 배 등 구매 농가를 찾아 나서고 있다. 최 씨 바로 옆 이병수 씨(52)의 배 과수원은 올해 피해를 거의 보지 않았다. 화학비료로 보충되지 않는 토지의 부족한 영양소를 채워주는 효소농법을 이용한 덕을 톡톡히 봤기 때문이다. 이 씨는 “효소를 한 번 치는 데 30만 원 정도 들지만 올해 7, 8번 효소를 쳤다”며 “일반적으로 한두 번 하는 인공수정도 세 번씩 하며 철저히 관리했다”고 말했다.

○ 새 공급처 찾아 동분서주

이날 오후 전북 전주시 덕진구 전미동1가 전주농협 산지유통센터(APC). 여름철 과일인 복숭아 포장 작업이 한창이다. 롯데마트 과일MD(상품기획자)인 신경환 과장은 전주배 추석 납품 계약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나주, 경북 상주, 경기 안성, 충남 천안 등 주요 산지 구매 물량으로도 세트상품 준비가 충분했지만 올해는 도저히 불가능해 새로운 산지 발굴에 나선 것이다.

전주는 다행히 냉해 피해를 거의 보지 않았다. 전주농협 APC 조래섭 과장은 “전주는 작황 수준이 작년과 비슷하다”며 “전주배는 기존 동남아나 미국 등으로 수출 물량이 많았지만 올해는 전주 배를 국내 소비자에게도 많이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농협 APC는 이날 롯데마트와 배 공급 계약을 새로 체결했다.

평년에는 매입 1개월 전에 선급금을 지급해 오던 유통업체는 올해는 45∼50일 전에 선급금을 주고 배 물량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상이변, 전염병 등에 따른 작황 부진이 ‘현대판 입도선매’ 현상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사과는 배에 비하면 작황이 좋은 편이지만 역시 좋은 품질의 물건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신세계 이마트는 올해 처음으로 사과 농가와 나무로 계약하고 아예 ‘이마트 나무’라는 표시를 해두고 있다.

○ 갈치 마늘도 ‘입도선매’ 경향

이처럼 수확이나 조업 이전에 ‘계약’으로 물량을 확보하는 경향은 다른 농수산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겨울 한파의 영향으로 올봄 갈치 가격은 10년 내 최고로 치솟았다. 이 때문에 이마트는 갈치 잡이 어선 100척과 계약하고 조업에 나서기도 했다. 이마트는 지난달 24일 제주 서귀포수협 및 선주협회와 ‘계약조업 조인식’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60만 마리 물량을 저렴한 가격에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마트의 설명이다.

홈플러스는 경북 의성군, 경남 창녕군 농가와 100% 계약 재배를 통해 마늘을 공급받는다. 이 회사는 역시 100% 계약 재배로 전남 무안군과 해남군에서 양파를 사들이고 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과일의 계약 재배율도 지난해 70%에서 90%로 끌어올렸다”며 “특히 지난해에 비해 작황이 40∼50% 나쁜 자두와 털복숭아는 전남 남원시 등 새로운 산지를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주·전주=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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