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섹션 피플] 권오철 하이닉스 신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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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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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아남는 좋은 반도체회사 만들자”
메모리반도체 집중 투자
눈덩이 부채 상환 주력

강당은 1층인데도 어두컴컴했다. 마치 오래된 대학의 낡은 대형 강의실 같았다. 29일 오전 경기 이천시 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권오철 하이닉스 신임 사장(사진)의 취임식 자리였다. 10여 년 전 여직원 기숙사를 지을 때 함께 지은 복지관 건물이었다.

다른 ‘대기업 사장님’들의 취임식에 늘 등장하던 전문 사회자의 자리는 사내방송 아나운서가, 화려한 축하 공연은 신입사원들이 각각 몸으로 때웠다. 참석자는 팀장 이상 직원 300여 명뿐. 그나마 서울과 청주 사업장의 직원들은 이천에 오지 못한 채 취임식을 화상으로 지켜봤다.

이 간소한 취임식에서 권 사장은 시종일관 “내실을 다지자”와 “잘하는 데 집중하자”는 얘기만 했다. “오래가는 좋은 회사를 만들자”면서 한편으로는 “오래가려면 호황과 불황 어느 때라도 버틸 수 있는 ‘자력갱생’이 가능한 회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하이닉스의 주력 상품인 메모리반도체는 공급 부족으로 시장 전망이 매우 밝다. 이 덕분에 하이닉스의 사업 여건은 최근 수년간 그 어느 때보다도 좋은 편이다. 지난해 4분기(10∼12월)에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의 분기 매출(2조7990억 원)과 기대 이상의 영업이익(7080억 원)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권 사장은 구조조정 직전의 회사 최고경영자(CEO)처럼 얘기했다. 메모리반도체 사업 계획을 말할 땐 “보수적으로 재무 운영을 하고, 리스크(위험)는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다”고 했고, 신사업 진출에 대해서는 “자기가 하는 일을 최고로 잘하는 것이 사업의 기본”이라고 단정했다. 메모리반도체를 제외한 신성장동력으로 일컬어졌던 비메모리반도체(시스템IC) 분야에 대한 신규 투자도 더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빚’ 때문이었다. 하이닉스는 세계적인 메모리반도체 업체로 1년 매출이 8조 원에 이르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뒤로 부채도 1년 매출만큼 쌓여 있다. 이자를 갚는 데만 수천억 원이 들어가는 구조라 한 번 더 불황이 닥치면 위태로워질 수 있다.

권 사장은 취임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 버는 영업이익의 3분의 1 정도는 재무구조 개선에 쓰고 싶다”며 “올해만 1조 원 정도의 채무를 줄일 계획”이라며 “전체 부채 규모를 4조 원 이하로 줄이고 싶은데 불황에 버티려면 기초 체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권 사장은 주주협의회에서 신임 CEO로 선출되기 전 최진석 부사장, 박성우 부사장, 김민철 전무 등과 함께 경합을 벌였다. 공교롭게도 최 부사장과 박 부사장은 엔지니어 출신이었고 권 사장(당시 전무)과 김 전무는 ‘재무통’이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나온 김 사장의 옆에는 ‘경쟁자’였던 박 부사장과 김 전무가 양편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최 부사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이닉스의 현 상황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 임원은 권 사장의 특징으로 “꼼꼼하고 완벽한 관리”를 첫손가락에 꼽았다. 그가 과연 하이닉스의 도약을 위한 발판을 확실하게 다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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