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한국팀 ‘금메달 경영’ 키워드는 승리 확신하고 싸우는 ‘先勝求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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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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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을 통해 본 겨울올림픽 선전 비결

‘노력하면 꼭 되리라’ 聖人與我同類 작전
신체적 열세 개의치 않고 폭발력 발휘
장수-병사 뜻 같이하는 上下同欲者勝
선수들 코치 신뢰… 온몸 불태워 보답

김연아,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 등 한국 겨울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의 활약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쇼트트랙 이외 종목에서 한국 대표팀이 겨울올림픽에서 따낸 메달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김윤만 선수의 은메달 1개와 이강석 선수의 동메달 1개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불과 4년 만에 체격 등 많은 열세를 극복하고 피겨스케이팅, 스피드스케이팅 등에서 잇달아 금메달을 따내며 겨울올림픽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특히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를 따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서양인들의 전유물이었던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과거 승부를 결정짓는 요소는 오직 힘이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기술과 전략으로 철저히 대비하고 분석해 승리를 일궈냈다. 전략, 기술, 자신감 등이 어우러진 한국 대표팀의 선전 비결을 손자병법과 맹자 등 동양고전에 나오는 경구를 통해 분석해 본다.

○ 선승구전(先勝求戰·싸우기 전 이길 방책을 세우라)

손자병법에서는 ‘전략’이야말로 양적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요소라고 강조한다. 감정, 오기, 감만 가지고는 이길 수 없다. 자신의 전력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승산이 있다고 판단할 때만 싸워야 한다. 승산이 없으면 승산을 만들어놓고 싸워야 한다. 손자병법이 ‘전쟁은 싸워서 이기러 들어가는 게 아니라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그 승리를 확인하러 들어가는 것’이라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은 한국 대표팀의 선전 비결을 ‘싸우기 전에 이미 이길 방책을 세워놓은 후 싸움에 임한다’는 뜻의 선승구전이라고 풀이했다. 박 원장은 “한국 대표팀은 빙질과 실내 온도를 과학적으로 계산하고 분석했고, 스케이트 날을 갈아주는 전문가까지 뒀으며, 쇼트트랙의 강점을 스피드스케이팅에 이식하는 등 치밀한 전략을 보유했다”고 평가했다.

손자병법은 전략의 3요소를 시간, 공간, 속도로 꼽는다. 첫째, 상대방이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출격해야 한다(출기불의·出其不意).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의 금메달리스트 이상화 선수는 출발이 다른 선수보다 늦었지만 경기 후반 적절한 시간에 막판 스퍼트를 올려 금메달을 땄다. 둘째, 상대방이 준비하지 못한 곳을 공격해야 한다(공기무비·攻其無備). 서양 선수들은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을 ‘동양 선수들이 치고 들어올 수 없는 분야’라고만 생각하고 안주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쇼트트랙에 눌려 주목받지 못했던 새로운 공간을 확보했다. 셋째, 상대방이 예상치 못한 빠른 스피드로 싸워야 한다(병자귀속·兵者貴速).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경기 막판 스퍼트에 주력하는 서양 선수들과 달리 코너링 부분에서 상대적으로 강한 스피드를 내며 승리했다.

○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장수와 병사가 뜻을 같이하라)

엘리트 체육을 중시하는 한국 체육계에는 때로는 체벌마저 용인하는 강압적인 훈련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2004년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을 맡은 김관규 용인시청 감독은 부임 직후 제일 먼저 분위기 쇄신에 앞장섰다. 김 감독은 선수의 특성에 맞게 운동량을 정해주는 ‘일대일 맞춤 훈련’을 도입하고 자율성을 크게 부여했다. 오직 승리만을 외치는 고되고 강압적인 훈련이 아니라 선수 개개인의 몸 상태와 분위기를 맞춰주면서 스스로 노력하도록 유도했다.

김연아를 지도한 브라이언 오서 코치도 ‘선수를 행복하게 만드는 피겨스케이팅을 가르치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오서는 김연아 이전에 전문적으로 선수를 지도한 경험이 전혀 없는 ‘초보’ 코치였다. 하지만 항상 친구처럼, 가족처럼 김연아를 따뜻하게 이끌고 격려하면서 자신이 따지 못한 금메달을 김연아에게 선사했다.

반면 선수에게 절대 복종을 요구하는 아사다 마오의 타티야나 타라소바 코치는 무려 9명의 제자에게 금메달을 선사했지만 그만큼 자신의 선수들과 자주 마찰을 빚었다.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에서 여자 피겨스케이팅 금메달을 딴 아라카와 시즈카는 올림픽 직전 타라소바 코치와 결별하고 다른 코치에게 간 후에야 금메달을 땄다.

선수단의 합심도 중요하다. 스케이팅 선수로는 환갑을 넘긴 30대의 나이에도 월드컵과 세계선수권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대표팀의 맏형 이규혁은 평소 모태범, 이상화 등 막내 선수들을 지극히 챙기는 걸로 유명하다. 모태범과 이상화가 금메달을 딴 후 “규혁이 형에게 감사한다”고 거듭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감독도 “이규혁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대표팀의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고 강조한다. 선수, 코치, 감독 모두의 합심과 단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손자병법은 상하동욕자승 즉 ‘장수와 병사가 뜻을 같이해야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가르친다. 지도자와 선수도 마찬가지다. 상호 신뢰가 뒷받침되면 선수들은 고된 훈련을 극복하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 “하나도 안떨렸어요” 한국 선수들 ‘자기확신’ 세계가 놀라 ▼

○ 오월동주(吳越同舟·이종교배의 힘)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 종목의 승부는 초반 100m 이후 첫 코너링에서 누가 안정적으로 가속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코너에서 속도를 너무 내면 원심력을 견디지 못해 넘어지거나, 균형을 잡기 위해 감속을 해야 한다. 때문에 코너링이 경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쇼트트랙과의 접목은 필수적이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지난해 여름부터 태릉선수촌에서 쇼트트랙 스케이트화를 신고 코너링 훈련에 집중했다. 특히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트로 전향한 지 7개월 만에 1만 m 금메달과 5000m 은메달을 따낸 이승훈 선수 등은 아예 쇼트트랙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코너링 능력 향상에 집중했다. 이승훈 선수는 메달을 딴 후 “이제는 스피드스케이팅의 승리 공식까지 체득했으므로 지금 다시 쇼트트랙을 하라면 예전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연아가 다른 선수, 특히 트리플 악셀이라는 한 가지 기술에만 주력하는 아사다 마오와 차원이 다른 선수로 평가받는 이유도 스포츠에 예술을 적절히 조화시키고 교배시켰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지금 당장 배우를 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표정 연기에 능하다.

손자병법에도 이종교배의 힘을 보여주는 단어가 나온다. 바로 오월동주(吳越同舟)다. 손자(孫子)는 “오나라와 월나라는 원수처럼 미워하는 사이지만 그들이 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풍랑을 만난다면 원수처럼 맞붙어 싸우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양쪽 어깨에 붙은 오른손과 왼손의 관계처럼 도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라면 다른 종목, 다른 선수의 기술과 장점을 내 것에 접목할 줄 알아야 한다. 로마제국이나 그리스제국 또한 다른 나라의 인재와 문물을 잘 흡수했기 때문에 대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 성인여아동류(聖人與我同類·나도 노력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

이규혁 등 과거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그간 세계선수권이나 월드컵대회에서 여러 차례 좋은 성적을 냈다. 하지만 올림픽에서는 한 번도 메달을 따지 못했다. 하지만 신세대 선수들은 선배들과 달리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도 전혀 떨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큰 무대가 주는 긴장감과 압박을 즐겼다. 피겨스케이팅 쇼트프로그램에서 아사다 마오 바로 뒤에서 연기한 김연아는 아사다 마오가 무결점 연기를 펼치며 높은 점수를 받은 데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층 차원이 높은 연기를 선보이며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나의 당당함과 자신감은 상대방을 위축시킨다. 피겨스케이팅 프리프로그램에서 김연아가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자 바로 뒤에서 연기한 아사다 마오는 점프 실수를 거듭했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 m의 세계 기록을 보유한 네덜란드의 스벤 크라머르의 코치가 코스 선택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한 이유도 이승훈의 예상 밖 선전에 지나치게 신경을 곤두세웠던 탓도 있다.

이상화 선수는 훈련할 때 남자 단거리 선수들을 파트너로 맞았고 남자 선수들 못지않게 근력 훈련에 치중했다.

맹자(孟子)는 성인여아동류(聖人與我同類) 즉, ‘나도 노력하면 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나는 여자니까, 서양 선수보다 체격 조건이 불리하니까, 한 번도 금메달을 따본 적이 없으니까’라고 생각하면 결코 금메달을 딸 수 없다. 항상 스스로를 위대하게 여기고 자신감과 투지를 불태워야 승리할 수 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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