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6000원에 휴대전화-인터넷 펑펑… 꼴찌의 반란

  • 입력 2009년 8월 28일 21시 25분


'꼴찌의 반란'이었다. 지난해 LG텔레콤이 월 6000원에 휴대전화로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오즈'(OZ)를 내놓자 이동통신 업계 1, 2위 사업자인 SK텔레콤과 KT가 급히 서비스 전략을 수정하고 무선인터넷 요금제를 쏟아냈다. 공격적인 무선인터넷 서비스 경쟁의 시작이었다. 꼴찌가 '게임의 규칙'을 바꾼 순간이었다.

오즈는 LG텔레콤의 무선인터넷 서비스 브랜드로, 월 1기가바이트(GB)의 데이터통화를 6000원에 제공하는 요금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그동안 LG텔레콤은 '3위 사업자', '통화품질이 떨어지는 곳' 등의 부정적인 기업 이미지로 고전했지만 최근 오즈를 통해 이를 크게 개선시켰다.

최근 휴대전화 사용자 커뮤니티에서는 이동통신사들의 무선인터넷 요금제 비교가 크게 늘었다. 요금 종류가 다양해진 덕분이다. 오즈는 이런 커뮤니티에서 인기가 높다. 단위 가격(1원 당 170KB)이 이동통신 3사 가운데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는 경쟁사의 4분의 1 가격이다. 심지어 경쟁 통신사를 수년 간 장기 이용한 고객조차 무선 인터넷 때문에 LG텔레콤으로 옮기는 경우가 나온다. 이들 대부분은 10대 후반~30대까지의 젊은 고객들이다. 통신 업계에선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차별화하는 게 쉽지 않아 충성도 높은 고객층이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LG텔레콤은 오즈 서비스로 '팬'까지 만들어냈다.

●3등이라서 가능했던 1등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휴대전화 보급률과 통화량을 자랑한다. 기술 투자도 끊임없이 이뤄져 이동통신사들은 달리는 차 안에서 휴대전화로 인터넷까지 이용할 수 있는 기술까지 확보했다. 하지만 이런 뛰어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휴대전화 무선인터넷 사용량은 매우 저조하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에서 인기 있는 무선인터넷 서비스란 벨소리 다운로드, 통화연결음 다운로드 정도다. 해외에서 인기 있는 무선인터넷 서비스가 인터넷 검색과 e메일 확인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벨소리나 문자메시지는 적은 양의 데이터만 주고받으면 되지만 인터넷을 이용하고 e메일을 주고받으려면 대용량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런데 국내 무선인터넷 요금은 몹시 비싸서 휴대전화로 무선인터넷을 사용하면 수십만 원의 데이터 통화료가 나오는 경우도 빈번했다.

LG텔레콤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2007년 중반, 이들은 사내에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렸다. 가장 먼저 시장부터 조사했다. 소비자들은 "이동통신사의 무선인터넷은 비싸고, 볼 게 없고, 쓰기 불편하다"고 불평했다. 긍정적인 대답은 거의 없었다. 비싼 데이터통화료와 빈약한 콘텐츠, 화면도 작고 갑갑한 휴대전화 단말기 등 총체적 문제만이 지적됐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은 가격이었다. LG텔레콤은 자신들이라면 가격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7년 당시 KT와 SK텔레콤의 가입자 1인 당 무선인터넷 매출은 약 1만 원에 이르렀다. 반면 LG텔레콤은 가입자 1명 당 무선인터넷 매출이 5000원도 되지 않았다. 참담한 '꼴찌 실적'이었지만, 이를 거꾸로 생각하기로 했다. TF팀에서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한 달에 약 4000원~8000원 정도 요금을 낸다면 무선인터넷을 맘껏 쓸 의향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월 6000원이란 요금제가 등장했다. 경쟁사가 같은 요금제를 만들면 이미 한 달에 1만 원 씩 무선인터넷을 사용하던 기존 고객들로부터 월 4000원의 손해가 생긴다. 이 요금제에 100만 명이 가입한다면 한 달에 40억 원, 1000만 명이 가입한다면 매달 400억 원 씩 손해를 보는 셈이다. 하지만 꼴찌였던 LG텔레콤이라면 이 요금제에 100만 명을 가입시킬 때 월 10억 원을 더 벌어들이게 된다.

●우리가 모든 걸 할 필요는 없다

가격 다음에는 '볼 게 없는' 콘텐츠와 '쓰기 불편한' 단말기가 문제였다. 그동안 이동통신사들은 직접 콘텐츠를 사서 자신들의 '무선 포털'에서 서비스했다. 유선인터넷에서는 '네이버'와 '다음' 같은 인터넷 포털이 존재했다. 이들은 e메일과 온라인 커뮤니티, 뉴스와 정보 검색 등 다양한 서비스로 고객을 모으며 2조 원이 넘는 시장을 만들어냈다. 이를 본 이동통신사들은 스스로 '무선인터넷의 포털'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 SK텔레콤은 '모바일네이트', KTF(현 KT)는 '매직엔', LG텔레콤은 '이지아이'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고객들은 이를 외면했다. 10년 이상 수십 개 업체가 경쟁하면서 더 나은 서비스를 개발해 온 유선 포털과 비교했을 때 비전문가들의 손으로 만들어낸 무선 포털은 매력이 없었던 것이다.

LG텔레콤은 오즈를 만들며 이런 '무선 포털 전략'을 포기했다. LG텔레콤 인터넷사업담당 이상민 상무는 "우리는 중개 역할만 할테니 서비스는 전문 업체들이 하라는 방향 전환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네이버와 다음 등 인터넷 포털들이 휴대전화에서 보기 편한 모바일 페이지(m.naver.com, mobile.daum.net)를 경쟁적으로 만들어냈다. 구글은 오즈 휴대전화에서 이용 가능한 지도 서비스를 제공했고, 다음은 자신이 현재 있는 곳 인근의 맛집과 생활정보를 보여주는 서비스도 개발했다. 결과는 LG텔레콤에게도, 인터넷 기업에게도 모두 도움이 됐다. 네이버 모바일페이지의 경우 98%의 사용자가 오즈를 통해 접속할 정도다. 처음으로 '무선인터넷 산업'이란 게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오즈, 단말기 시장도 바꾸다

남은 문제는 쓰기 불편한 단말기였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컴퓨터로 보던 넓은 화면을 좁은 휴대전화 화면으로 보는 게 쉽지 않았다. 마우스도 없이 방향키로 화면을 움직이는 것도 불편했다. LG텔레콤은 그래서 단말기 제조업체를 찾아갔다. 계열사인 LG전자를 설득해 오즈 서비스를 위한 휴대전화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요구는 구체적이었다. △일반 휴대전화 화면(2.2인치)보다 화면이 커야 하고(3인치) △해상도도 5배 더 또렷해야 하며 △휴대전화 앞면은 터치스크린으로 만들고 △인터넷 사용을 위한 웹브라우저도 넣을 것을 주문했다.

화면을 위로 밀어 올려 번호판을 누르는 '슬라이드' 방식의 휴대전화가 대세였던 때였다. 이렇게 LG전자는 '오즈폰'을 만들었고, 이후 오즈의 성공은 '풀터치폰 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 영역을 탄생시켰다.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업체들에게 새로운 휴대전화 시장을 열어준 셈이다.

<20031015|김상훈기자 sanhkim@donga.com>031015|김상훈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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