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料는 현금으로”… 카드 권하는 정부 맞나

  • 입력 2009년 6월 2일 02시 59분


#1. 주부 황모 씨(35·경기 성남시)는 지난달 본인과 자녀 2명의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구청을 찾았다 낭패를 봤다. 12만5000원의 여권발급 수수료를 내기엔 현금이 부족해 신용카드를 꺼내자 구청 직원은 “구청이 슈퍼마켓인 줄 아느냐”고 핀잔을 줬다. 황 씨는 “커피 한 잔도 카드결제가 되는데 공공기관이 수수료를 현금으로만 받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2. 자영업자 이모 씨(51)는 신용카드로 국세를 납부하면 6월 초까지 무이자 할부 혜택을 제공한다는 카드사의 e메일을 받았다. 반가운 마음에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 했지만 납세자가 세액의 1.5%를 카드 수수료로 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는 “영세자영업자도 부담하는 수수료를 정부가 국민에게 떠넘기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

카드로 세금내면 1.5% 할증…수수료 전가금지 정책 역행
여권발급비 등 아예 불가능…“커피 한잔도 되는데” 빈축

정부가 소비 진작을 통한 경기 활성화와 세원(稅源) 확보를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권장하고 있지만 정작 공공요금과 여권발급 수수료와 같은 정부 수수료는 카드결제가 안돼 국민이 불편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권익위원회는 공공요금, 정부 수수료, 대학등록금 등의 신용카드 결제 실태를 파악해 이달 중 해당 정부부처와 기관에 제도 개선을 권고하기로 했다.

○ 자가당착에 빠진 정부

1일 국민권익위원회가 내놓은 ‘신용카드 납부제도 개선 자료’에 따르면 가정용 전기요금과 지역건강보험료는 카드 납부가 가능하지만 산업용 전기요금이나 도시가스요금, 상하수도요금, 국민연금보험료, 직장건강보험료 등 대부분의 공공요금은 카드로 낼 수 없다.

수수료를 징수하는 정부 기관도 카드를 받지 않는 곳이 상당수다. 현재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는 기관마다 최고 569종류의 수수료를 징수하고 있다. 금액도 건당 1000원에서 많게는 20만 원에 이른다. 하지만 법무부 식품의약품안전청 등 15개 중앙부처와 6개 광역시도는 법령과 조례로 신용카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올해 1학기에 등록금 카드 납부를 허용한 대학은 전국 380개 대학(전문대 포함) 중 52곳으로 13.6%에 불과했다. 국공립대는 6곳만 카드를 받았다. 그나마 카드 납부가 되는 대학도 주거래은행과 독점계약을 해 해당 은행의 카드만 받고 있다.

공공 성격이 강한 기관들의 이런 관행은 정부의 신용카드 활성화 대책과 모순된다. 정부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카드영수증 복권 제도를 도입한 것은 물론 여신전문금융업법을 개정해 가맹점의 신용카드거래 거절 금지, 카드회원에게 가맹점 수수료 전가 금지 등을 규정하며 카드시장을 키웠다. 이에 따라 가맹점은 1999년 619만 개에서 지난해 말 1561만 개로 늘었고 민간소비지출에서 과세당국의 세원 파악 비율을 나타내는 소비포착률도 1999년 1.5%에서 2008년 말 65.9%로 높아졌다.

○ 수수료 안 물려고 카드결제 거부

공공기관들이 카드결제를 거부하는 것은 카드 가맹점 수수료 부담 때문이다. 공공기관은 1.5% 안팎의 수수료가 공공요금 인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논리로 카드 결제를 꺼리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해 10월 국세의 카드 납부를 허용했지만 수수료는 납세자가 부담토록 하고 카드납부 한도도 200만 원으로 제한했다. 이 때문에 올해 1분기 카드로 납부된 국세는 457억 원으로 전체 국세의 0.1%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수수료를 국가가 부담하면 현금 납세자와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며 “하지만 현행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수수료와 한도 문제 개정을 기획재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정부가 국민의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하면서 카드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불합리할 뿐 아니라 정부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이라며 “정부부터 솔선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바로잡습니다▼

◇2일자 A12면 ‘공공料는 현금으로…카드 권하는 정부 맞나’ 기사에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신용카드로 낼 수 없는 사람은 ‘직장’ 가입자뿐이며 ‘지역’ 가입자는 카드로 보험료를 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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