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채권 규모 30조 웃돌아…금융건전성 훼손 ‘선제대응’

  • 입력 2009년 5월 25일 03시 05분


■ 기업 구조조정 왜 고삐 죄나

채권단이 대기업그룹 9곳과 다음 달 초까지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키로 함에 따라 지지부진했던 대기업 구조조정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그룹 2곳도 하반기 중 재무 건전성을 크게 높이지 못하면 추가로 약정을 맺어야 해 구조조정 대상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일각에선 부실채권 규모가 이미 30조 원을 넘어선 상태여서 대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금융회사들의 건전성이 일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핵심 계열 팔아 덩치 줄이기

현재 주채권은행들은 재무약정 체결 대상 그룹들에 대해 핵심 계열사를 팔도록 요구하고 있다. 기업들이 최근 몇 년간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 부채 규모가 늘고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급감한 만큼 덩치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경기가 부진했음에도 기업 인수합병은 크게 늘어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건수가 2007년 493건에서 2008년 550건으로 11.6% 증가했다.

그룹의 덩치 줄이기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주도하고 있다. 민유성 산은 행장이 13일 기자간담회에서 “거대한 몸집을 가지고 세계시장에 가면 안 된다. 비핵심 계열사를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하자 시장에선 구조조정 관련 매물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한 그룹은 합금철을 생산하는 계열사를 산은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산은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산은 대출이 많은 다른 그룹도 2007년 사업 분야를 확대하면서 크게 늘어난 차입금을 줄이기 위해 유통 관련 계열사 지분을 일부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채권단 중심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 추진되고 있는 건설 관련 그룹은 매각할 만한 계열사가 없어 보유 부동산을 팔아 현금을 확보하기로 했다.

반면 기업 인수로 지불한 비용이 커 구조조정 대상으로 꼽혔던 한 그룹은 내부 유보금이 3조 원이 넘고 재무구조 개선에 충분한 정도의 자금조달이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받아 일단 이번 재무약정 체결에서 빠졌다.

○ 30조 원 넘어선 부실채권 더 늘 듯

금융계는 계열사 및 자산 매각도 중요하지만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늘어날 부실채권을 신속히 정리해 기업 부실이 금융권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기업 부실 및 연쇄 도산→부실채권 급증→금융권 부실 확대→경제위기 심화’의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후 경기 침체와 구조조정 여파로 금융권의 부실 대출채권은 급증한 상태다. 금융 당국은 3월 말 현재 금융권의 부실채권 규모가 31조 원으로 작년 9월 말보다 10조4000억 원(50%)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부실채권 정리를 위해 6월부터 자산관리공사(캠코)에 설치되는 구조조정기금을 투입해 우선 4조7000억 원에 이르는 금융권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채권을 사들일 예정이다. 한 시중은행의 여신담당 부행장은 “구조조정의 속도를 높이는 것과 함께 부실채권 정리가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은행과 캠코 사이의 채권 거래방식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