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본, 은행업 진출 ‘삐걱’

  • 입력 2009년 5월 2일 02시 57분


與 “개정안 시행전 교통정리할 것”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은행법 및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가운데 은행법만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이 당분간 어렵게 됐다. 국내 주요 은행이 대부분 지주회사의 지배를 받는 현실에서 지주회사 관련 소유규제를 그대로 둔 채 은행 소유규제만 풀어서는 금산분리 완화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은행법 개정안은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 한도를 4%에서 9%로 늘려 제조업 중심인 기업도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또 종전에는 산업자본이 사모펀드(PEF)에 10% 이상 출자하면 해당 PEF가 산업자본으로 간주돼 은행을 소유하기 힘들었지만 앞으로는 산업자본이 18% 이상 출자한 PEF만 산업자본으로 간주된다. 이에 따라 지금보다 더 많은 PEF가 국내 은행 투자에 관심을 보일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공적 연기금은 산업자본의 출자비율이 높아도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으면 은행 지분을 9% 초과해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

당초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 같은 규제완화 방안을 금융지주회사법에도 그대로 적용할 계획이었다. 산업자본이 금융지주회사 지분을 9%까지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도입해 지주회사 형태가 많은 국내 은행업계에 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실질적으로 넓히려 했다.

하지만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부결됨에 따라 현재로선 산업자본이 KB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같은 지주회사의 지분을 4% 넘게 소유할 수 없다. 예컨대 은행법 개정에 따라 산업자본이 국민은행 지분을 9%까지 소유해 대주주가 될 수는 있게 됐지만 KB금융지주의 대주주는 될 수 없는 것이다. 국민은행이 KB금융지주의 지배를 받는 구조여서 경영권에 관심이 많은 전략적 투자자로선 국민은행 지분만 사는 데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외환은행은 지주회사 형태가 아니어서 이번 은행법 개정만으로 산업자본의 투자한도가 확대되지만 현 대주주인 론스타가 보유 지분 51%를 한꺼번에 매각하려고 해 큰 의미가 없다.

전문가들은 은행법만 완화하고 금융지주회사법은 그대로 두는 기형적인 법체계가 장기화된다면 산업은행 민영화 작업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산은은 산은법 개정안 시행 후 5년 이내에 산은지주회사 지분을 팔아 민영화할 계획인데 현행 제도로는 산은지주의 매수자를 찾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은 “은행법 개정안이 4개월 후 시행되기 전까지 법사위에 계류 중인 금융지주회사법을 수정해 이번 문제를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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