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상생이 꽃피운 ‘48년 무분규 - 9년 무교섭’ 신화

  • 입력 2009년 5월 1일 02시 56분


대한통운 이국동 사장(오른쪽)과 차진철 노조위원장이 서울 중구 서소문동 본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회사는 노사화합으로 2001년 부도위기와 2003년 화물연대 파업을 무사히 극복하고 물류업계 1위로 올라섰다. 홍진환  기자
대한통운 이국동 사장(오른쪽)과 차진철 노조위원장이 서울 중구 서소문동 본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회사는 노사화합으로 2001년 부도위기와 2003년 화물연대 파업을 무사히 극복하고 물류업계 1위로 올라섰다. 홍진환 기자
대한통운 노사, 법정관리 위기 딛고 업계 1위 도약

使 “가슴 열고 소통 이끌어”

勞 “회사 있어야 노조 있죠”

화물연대 파업이 한창이던 2003년 5월 초 대한통운 부산지사 옥상. 당시 부산지사장인 이국동 사장은 전 직원을 불러내 비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2001년 법정관리 위기도 노사화합으로 이겨낸 우립니다. 파업 참여로 국가 산업의 핏줄인 항만이 멈추는 상황만은 꼭 막아주십시오.”

동고동락해온 이 사장의 당부에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일주일 이상 지속된 2003년 화물연대 총파업 기간에도 대한통운은 홀로 작업에 임했다. 이때부터 납기 준수가 생명인 화주(貨主)들에게 ‘대한통운=신뢰’라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 잡았다. 실제로 총파업 기간 큰 손실을 볼 뻔한 신발 제조업체 나이키는 대한통운에 대한 고마움에 지금까지도 통상 운임보다 30% 높은 대가를 지급하고 있다.

○ 노조 ‘잡셰어링’ 주도로 위기 극복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30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 대한통운 본사에서 만난 이 사장은 당시 얘기를 꺼내자 “파업 불참으로 직원들이 위협을 받기도 했지만 끝까지 회사를 위해 참아준 것이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대한통운에 지속적 성장을 가져온 상생(相生)의 노사문화는 뿌리가 깊다. 2000년 모기업이던 동아건설이 부도를 내자 지급보증을 섰던 대한통운도 함께 부도위기를 맞았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 중단으로 물어낼 손해보상금만 13억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노사는 힘을 합쳐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노조는 2001년 스스로 임금 삭감과 상여금 반납을 결정하고 노조위원장이 전국 지사를 돌면서 이를 홍보했다. 사측도 직원들의 고용안정을 최우선으로 여겨 구조조정을 자제했다. 요즘 유행하는 ‘잡셰어링’이 8년 전 대한통운에서 이미 실현된 셈이다. 특히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은행 대출이 막히자 경영진과 노조위원장이 사재를 담보로 대출을 받은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이처럼 노사가 한 몸이 돼 위기관리에 나서면서 대한통운은 급속한 성장세로 돌아섰다. 화주들이 몰려 지난해 연간 택배물량은 1억6000만 상자로 2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올해 1분기(1∼3월) 매출은 541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4.7%나 늘었고, 영업이익도 45.6% 증가했다.

○ 노사 정보공유로 신뢰 쌓아

위기 때 빛을 발한 대한통운의 노사관계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올해로 9년 연속 무교섭 임단협 체결의 전통과 함께, 노조 설립 이래 48년 연속 무분규 기록도 세웠다. 이는 평상시 양측의 활발한 소통과 정보교류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한통운은 경영전략 회의 등에 노조위원장을 참석시켜 경영정보를 공유하는 한편 사장이 노조 대의원대회에 나와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직접 듣고 있다. 차진철 노조위원장은 “사측이 회사의 정책과 현실을 가감 없이 노조에 제때 알려주기 때문에 충분히 서로 신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1996년 이후 대한통운을 4회 연속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했고, 2002년에는 노사문화 대상을 수여했다. 이 사장은 “앞으로도 노조와 흉금을 터놓고 소통해 노사가 지속적으로 상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옆에 앉아있던 차 위원장은 “회사가 있어야 노조도 있는 것 아닙니까. 노조는 대한통운을 ‘입사하고 싶은 회사’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니 제가 마치 사장님이 된 것 같네요”라며 웃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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