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버리는 삼겹살이 상등품…豚이 돈 된다

  • 입력 2009년 3월 20일 22시 33분


한국과 유럽연합(EU) '삼겹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동아일보 경제탐정의 안테나에 걸렸다.

소문을 좀더 설명하자면 타결을 향해 치닫고 있는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의 최대쟁점 이 삼겹살이라는 것이었다.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협상자료를 찾아 봤지만 삼겹살이라는 문구는 눈에 띄지 않았다.

'헛소문이었나? 아니야 통상협상에서는 중요한 사안을 물밑에서 밀고 당길 때가 많잖아.'

경제탐정은 헛고생 하는 셈치고 주무부처의 담당자를 찾아가봤다.

'빙고.'

●소문의 진위는?

담당자의 설명을 들어보니 한-EU 간에 돼지고기 삼겹살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벌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협상자료에서 이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은 삼겹살이라는 낯익은 이름 대신 '냉동 돼지고기'라는 딱딱한 용어가 사용됐기 때문이었다.

담당자에 따르면 EU 측은 한국이 EU산 냉동 돼지고기에 부과한 관세를 2014년경에 철폐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2014년은 한미 FTA의 규정에 따라 미국산 돼지고기의 관세가 철폐되는 시기다. 즉 EU 측은 먼저 협상을 타결한 미국과 똑같은 대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소문에는 EU 측이 이처럼 무리를 하는 것은 한국인의 각별한 삼겹살 사랑을 잘 알고 있기 때문.

돼지고기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농림수산식품부의 이연섭 축산경영팀 사무관에게 전문가적인 견해를 들어봤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돼지고기의 부위 중에서 유독 삼겹살과 목살을 좋아합니다. 유럽인들은 살코기를 주로 먹기 때문에 삼겹살이나 목살은 남아돕니다."

EU로서는 한국과의 FTA가 거의 버리다시피 하는 삼겹살과 목살을 효자 수출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설명이었다.

국내 돼지고기 부위별 판매통계를 보니 이런 설명이 확신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농협 하나로마트 9곳의 연간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삼겹살이 차지하는 비중은 38.3%, 목살은 17.1%였던데 비해 안심과 등심은 두 부위를 합쳐도 4.8%에 불과했다.

삼겹살, 목살의 선호도는 소비자 가격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올해 1월 ㎏당 부위별 월평균 가격은 삼겹살이 1만2075원, 목살이 1만625원으로 모두 1만 원을 넘었다. 반면 등심은 5150원, 후지는 4675원으로 각각 절반 수준으로 대조를 이뤘다.

특히 이달 발표된 이마트의 삼겹살 판매가격은 ㎏당 2만 원을 넘어서 그 인기를 입증했다. 한 달 사이 15.8%나 오른 가격.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하면 무려 33% 오른 수준이다.

●왜 삼겹살일까?

서양에서 '지방덩어리'라고 홀대 받는 삼겹살이 한국에서 유독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농협 양돈팀의 박종갑 차장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쌈 음식, 구이 음식을 선호하는 한국의 식문화를 꼽았다.

"한국은 고기를 구워 채소에 싸먹는 식문화가 정착돼 있기 때문이죠. '쌈 음식'에는 안심이나 등심은 퍽퍽해 적절한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하지만 삼겹살이나 목살처럼 지방이 많은 부위는 구운 뒤 부드러워져 쌈용으로 적합합니다."

대한양돈협회 김동완 홍보팀장은 바쁜 라이프스타일과 핵가족화가 구이음식 문화를 정착시켰다고 분석했다.

"바쁜 생활과 핵가족화 속에서는 즉석에서 빠른 시간에 만들어 먹는 구이 음식을 선호하게 마련이죠. 오래 전에는 전골 음식이 대표적이었지만 삶의 패턴이 바뀌니 구이 문화가 주된 문화로 자리 잡은 듯 합니다."

홍문선 한국식생활개발 연구회 이사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한국의 '삼겹살 사랑'이 유별나다"며 "일본은 돈가스 재료인 등심과 안심이 선호되고 중국은 전통적으로 다양한 요리법이 고르게 발달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FTA 이후엔 무슨 일이…

한미 FTA에 이어 한-EU FTA의 물결을 맞는 한국 돼지고기 시장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앞날을 내다본다는 것은 전문가들에게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지금까지의 변화추이를 살펴보면 어렴풋이 추정해 볼 수는 있다.

한국 돼지고기 시장은 수입산 돼지고기의 공략으로 '춘추전국' 시대에 접어든 분위기다. 돼지고기 자급률은 2004년 86.9%에서 2008년 75.4%까지 떨어졌을 정도다.

선두는 미국산 돼지고기. 미국산 돼지고기는 가격 경쟁력이 높은 편이다. 2014년 미국산 돼지고기에 대한 관세가 없어지면 현재 가격에서 더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유럽 국가들이 '한국 공략'을 더욱 서두르려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산이 한국 시장을 먼저 선점해버리면 뒤따라가기가 힘들어지기 때문.

해외 무역 강국들의 춘추전국 시대가 예고되자 정부와 국내산 돼지고기 농가의 바쁜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이들의 전략은 '국내산 돼지고기 가격 내리기'.

마침 20일 농식품부는 "돼지고기를 시중 판매가격 보다 최대 40% 싸게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웃지 못 할 이벤트도 생겨났다. 대한양돈협회는 '삼겹살 데이'로 알려진 이달 3일 역발상으로 "삼겹살 데이에는 삼겹살을 먹지 말자"고 말하고 나섰다. 삼겹살에 편중된 국내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삼겹살이 아닌 다른 다양한 국산 돼지고기 요리를 홍보한 것이다.

FTA 이후 황금 삽겹살 시장을 둘러싸고 한국과 해외 양돈농가의 경쟁이 더욱 뜨거워질 것이라는 점에는 한점의 '의혹'도 없을 듯하다.

조은아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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