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백 ‘한국 외환시장’

  • 입력 2009년 3월 5일 02시 58분


역외세력이 선물환거래 주도

국내기관 동조로 환율 부추겨

흑자 수출기업은 달러 안 풀고

수입업체 결제수요는 늘기만

최근 달러당 원화 환율이 급등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환투기 세력에 취약한 한국 외환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외환시장이 경제 규모에 비해 너무 작아 역외 세력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장을 키워야 하지만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 외환당국은 속만 태우고 있다.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달러당 1.40원 내린 1551.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최근 환율이 1600원 선을 위협하며 급등하자 외환당국이 달러화를 시장에 내놓으며 개입에 나서 약간 진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화는 올해 들어 달러화 대비 18.8%나 가치가 절하됐다. 주요국 통화 가운데서는 가장 큰 폭으로 가치가 떨어졌으며, 아시아에서 통화가치가 많이 하락한 인도네시아 루피아화(9.5%), 인도 루피화(6.5%)보다도 훨씬 큰 폭으로 떨어졌다.

○원화는 환투기 세력의 ‘장난감’

외환당국은 최근 역외세력들의 환투기가 시장 흔들기에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선을 돌파하면서 역외세력의 ‘사자’ 주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며 “세계적 투자은행(IB) 등이 운용하는 대형펀드들이 달러 매수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역외세력이 환율 상승에 베팅하며 대량 매수 주문을 내자 국내 기관들도 덩달아 추격 매수해 환율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최근 일부 외신이 제기한 한국 위기설은 역외세력의 투기 성향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한국이 경제규모는 적당히 크고 개방도는 높은 반면 외환시장 규모는 작기 때문에 이처럼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할 때 환투기 세력의 타깃이 되기 쉬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한은에 따르면 2002년 하루 평균 6억 달러 수준에 불과하던 역외선물환(NDF) 거래는 2008년 75억 달러로 6년 사이에 12.5배로 급증했다. 이는 지난해 하루평균 선물환 거래 규모 98억 달러 가운데 76.5%나 차지하는 것으로 선물환 거래에서 역외세력이 국내 수출업체의 영향력을 능가하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수출업체, 대기업도 달러 안 풀어

2월 무역수지가 33억 달러 흑자를 냈는데도 수출기업들이 달러를 내놓지 않는 것 역시 환율 안정을 막고 있다. 특히 조선업체들은 수년간 선박수주를 받으면 외환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대규모로 선물환 매도를 해놓았기 때문에 수출대금을 받아도 외환시장에 달러가 공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 선박 수주 취소가 늘면서 조선업체는 달러를 새로 사들여 빌린 달러를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진우 NH선물 부장은 “2004년 이후 2008년 상반기까지 수출기업들은 과도하게 달러를 선물로 앞당겨 팔고, 수입업체들은 달러 결제를 미뤄왔으며, 해외펀드 때문에 투신업체들도 대규모 선물환 매도 헤지를 해놓았다”며 “이렇게 미뤄놓은 달러 수요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국내 대기업이 지난해 하반기처럼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움켜쥐고 있는 것도 문제다. 수입업체의 결제 수요와 역외 매수세는 강한데 시장에 풀리는 달러는 적다보니 환율 상승폭이 커지고 있는 것.

한 대기업 재무팀 관계자는 “기업들은 여전히 환율이 떨어질 때가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불안한 금융환경에서 기업들도 우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달러를 무조건 쥐고 있으려 한다”고 전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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