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한미FTA ‘풀뿌리 로비’가 먹힌다

  • 입력 2009년 2월 6일 02시 58분


美의원 한두명 접촉으론 한계

현지 유권자들 내세워 설득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현 상태로는 어려울 듯.’

지난해 말 한국무역협회 미국 워싱턴·뉴욕지부에서 작성한 내부 보고서의 제목입니다. 요점은 미국과의 FTA 비준을 앞두고 있는 콜롬비아 및 파나마와, 한국의 처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미-콜롬비아 FTA의 경우 비준에 반대하는 미 의원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뉩니다. 한 그룹은 모든 FTA에 반대하는 ‘전면 반대파’이고, 다른 한 그룹은 상대국 노동인권 현실만 문제 삼는 ‘부분적 반대파’라고 합니다.

콜롬비아로서는 이 ‘부분적 반대파’ 그룹만 설득해도 비준이 어렵지 않은, 편한 처지입니다.

한국은 다릅니다. 자동차 등 현안이 걸려 있는 한 한미 FTA 비준은 어렵다고 이 보고서는 주장합니다. 이 보고서는 그 근거 중 하나로 이번 제111대 미 의회를 이전 의회와 비교해 보면 보호무역 성향의 상원의원이 5명, 하원의원이 27명 더 늘어났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심상찮은 기류 때문에 무역협회는 지난해부터 미 현지 통상무역 전문 로펌으로부터 한미 FTA 문제 관련 정보 분석자료를 정기적으로 전달받고 있습니다. 무역협회는 이 자료를 외교통상부와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 이뤄지는 한미 FTA 논의를 보면 비싼 돈을 들여 사오는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한미 FTA 비준 등과 관련해 미 의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찰스 랭걸 미 하원 세입위원장이 한 ‘조언’을 한 번 볼까요.

랭걸 위원장은 로비스트를 동원해 주요 의원 한두 명 정도를 포섭하는 방식은 통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고 이 보고서는 전합니다. 외국인(한국) 입장에서 직접 미 의회를 접촉하기보다는 토박이 미국인을 ‘풀뿌리 로비’ 차원에서 교육시켜 대리인(surrogates)으로 내세우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유권자인 그들의 입을 통해 한미 FTA가 가져올 긍정적 효과를 미 의원들에게 ‘재전송(re-cast)’해야 한다는 것이죠.

랭걸 위원장은 또 “문제가 되는 자동자 관련 조항의 실체에 대해서도 이들 미국인의 입을 통해 의원들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워싱턴 사정에 정통한 한국 고위 소식통은 “현지 분위기를 전해도 한국의 당국자들은 국회가 한미 FTA를 비준하는 것이 최선이자 미 의회를 움직이게 할 것이라는 기존 견해만 되풀이하더라”며 답답해하더군요.

상대국의 정치적 지형을 제대로 읽어내는 냉철함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김정안 산업부 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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