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인식 ATM” 범죄예방 특효약일까

  • 입력 2009년 2월 3일 21시 07분


경기 서남부 연쇄 살인사건 등 강력 범죄가 잇따르자 경찰청이 "전국 7만 여개 은행 현금자동인출기(ATM)에 얼굴 인식 기능을 부착하자"는 이색 대안을 내놨습니다. 마스크나 선글라스 등으로 얼굴을 감추면 아예 돈을 찾지 못하도록 하는 생체 인식기술을 ATM에 장착하자는 것입니다.

강력 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이 피해자의 카드를 빼앗아 가발이나 마스크를 쓰고 은행 ATM에서 돈을 찾아 달아나는 일이 자주 일어나지만 ATM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 카메라에 얼굴이 제대로 찍히지 않아 단서를 찾기 어렵다는 게 이유입니다.

경찰 측의 요청에 따라 은행연합회도 지난달 30일 각 은행 실무 담당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 방안을 협의하고 후속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은행권은 범죄 예방 등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얼굴 인식 프로그램 도입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굴 인식 ATM은 2005년 4월 외환은행 등 일부 은행 지점에서 시범 운영했지만 고객들의 불만이 제기돼 2주 만에 사용이 중단됐습니다. 얼굴 인식 절차가 기존 ATM보다 복잡한 데다 얼굴을 인식하는데 오류가 많아 고객들의 불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콧수염이 있거나 입 주변 윤곽이 흐릿해서 얼굴 인식에 오류라도 난다면 고객 불편이 클 것"이라며 "얼굴에 화상을 입은 환자는 원치 않아도 자신의 얼굴을 공개해야 하는 등의 인권 침해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얼굴 인식 ATM이 도입되면 신원 노출을 우려한 범인들이 인질이나 노숙자를 이용한 대리 인출을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나마 확보할 수 있는 용의자의 신체 윤곽마저도 확보할 수 없을뿐더러 인질 범죄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경찰 측에 관련 업체와 합동으로 얼굴 인식기술의 정확도를 검증하는 시연회를 열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운 기술 도입에 따른 예상되는 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철저한 대비와 사회적 공감대를 마련하고 창의적인 범죄 예방 대책이 나왔으면 합니다.

박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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