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돈 가뭄…대출연체-가계수표부도 급증

  • 입력 2009년 1월 21일 02시 54분


서울 지하철2호선 당산역 주변에서 7년째 분식점을 운영하는 이혜령(46) 씨는 얼마 전 종업원 4명 중 2명을 내보냈다. 하루 매상이 지난해 11월부터 평소의 60%로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씨는 “경기가 나빠 떡볶이나 김밥 사 먹는 사람조차 줄어 월세 내기도 빠듯하다”며 “대출을 받아서라도 3월까지는 어떻게든 버텨볼 작정이지만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가게를 처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기침체의 직격탄이 자영업을 덮치면서 금융기관에서 빌린 원금이나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시중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9월 말 현재 1.52%로 6월 말(1.12%)보다 0.40%포인트 급등했다. 같은 기간 전체 대출 연체율은 0.79%에서 0.97%로 0.20%포인트 상승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은행권이 연말에 부실 여신에 대한 대손상각을 하기 때문에 지난해 말 기준 연체율 급등세는 둔화될 수 있지만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 자영업자의 연체율이 다시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자영업자도 속출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부도율을 알 수 있는 지표 중 하나인 가계수표 부도율이 지난해 10월 1.03%, 11월 1.18%를 나타냈다. 지난해 1∼9월까지는 매달 0.7∼0.8%를 안정적으로 유지했지만 10월부터 급등세를 보인 것. 개인사업자의 부도 건수도 9월 63곳에서 10월 110곳, 11월 92곳으로 늘었다.

소상공인이 많은 서울 영등포구의 소상공인지원센터에는 요즘 소득 감소와 업종 전환을 고민하는 자영업자의 전화 상담 요청이 크게 늘었다.

양승근 서울시 영등포소상공인지원센터 선임상담사는 “1년 전에 비해 상담요청이 갑절로 늘었다”며 “당장 매출이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은 사업자도 상황이 나빠질 것에 대비해 자금 확보 방안을 문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자영업자가 만드는 일자리도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도소매, 음식 숙박업에서 일자리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6만5000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한 음식점 사장은 “사람을 구한다는 안내문을 써 붙이지 않아도 하루 4, 5명이 일자리를 문의할 정도”라며 “마흔이 안 된 젊은 여성부터 갈빗집이나 삼겹살집을 운영하다 폐업한 자영업자까지 있다”고 귀띔했다.

자영업자들이 은행돈을 빌리기는 쉽지 않다.

국민 우리 하나은행 등 3개 시중은행의 소호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현재 55조2858억 원으로 2007년 말보다 4조124억 원(7.8%)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07년 한 해 7조5840억 원(17.4%)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절반에 불과하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41) 씨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폐업하면 바로 빈민층으로 전락하기 쉽다”며 “정부가 금융기관에 기업 대출을 늘리라고 독려만 하지 말고 자영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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